20251114_김택용(1937년생, 남) 2026.03.08 일 오후 9:06 ・ 70분 51초 이민재 참석자 1 00:00 조금 이제 어른들이 유사 동수 시조니 행공조니 이래 올라갔는데 확실히는 모르겠습니다. 내가 나기 전에도 아마 이런 참석자 2 00:13 그것도 그런데 선생님이 이런 유사를 언제 처음 시작하셨는지 참석자 1 00:21 내가요 참석자 1 00:32 이 동네 풍속이 내장지를 2년을 하게 되면은 임기가 2년인데 임기를 하게 되면은 유사를 공제해 줍니다. 그래서 대본 동수라고 이제 동수로 임명되지요. 예 임명돼 가지고 동수로 임명돼 가지고 1년을 수고를 하게 되면은 시졸이라고 1급 진급합니다. 진급해가지고 시졸이 1년 있으면은 행공조리로 그냥 이제 올라가는 거지 그런데 나는 1996년도 90년도 하여튼 96년도 97년도 하여튼 98년도 98년 구장하고 인창 들어갔는데 구장도 또 남보다 한 번 더 했는데 인창 동수는 어디 갔어요? 참석자 2 01:50 선생님께서는 이제 9장을 하고 그다음에 방을 들어 대학 때 그냥 벌써 그러면 참석자 1 01:58 구장 한 사람이 요즘은 또 조금 제도가 바뀌어야 돼 가지고 구장 말고 총계장이나 번영회장 지금 말해서 민선 당선자는 구장과 같이 취급해 줍니다. 그래서 1년은 유사질은 재배시켜주지 2년 고생했기 때문에 그래서 대반 도수를 임명받기로 합니다. 요즘은 제도가 그래 그때도 우리는 구장만 해야 이제 유서를 공지하고 동수를 올렸는데 지금은 조금 이제 송 계장하고 번영회장은 민선 당선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이제 유사를 빼주고 동수를 구장과 같은 대우를 합니다. 참석자 2 02:50 선생님 그러면 90년대 임방되시기 이전에도 근데 임방은 아니셨지만 동수나 유산은 아니셨지만 아버님께서 이 조니의 활동을 하셨다 하셨지 않습니까? 참석자 1 03:06 우리 아버지가 동네 대조림까지 했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참석자 2 03:12 아버님 성함이 혹시 참석자 1 03:14 김대억 김자 큰 대자 이 이 인변에 참석자 2 03:23 예 예 예 예 참석자 1 03:25 대전까지 했습니다. 참석자 2 03:31 김대혁 선생님 선생님 그럼 혹시 아버님은 언제부터 이렇게 좀 조니에 활동하셨는지 기억 그러니까 들으신 바가 있으십니까? 아니면 참석자 1 03:42 아버지는 무맹자이기 때문에 이제 유사부터 올라갔지 유사부터 올라가고 유서부터 올라가고 솔직한 말로 내가 뭐 이래 좀 학교 다니고 아버지를 이제 많이 도왔습니다. 동네에 들어가게 되면 유사는 심부름을 많이 하지만 동수가 되면 동네 재정을 맞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럼 뭐 이래 옳게 참 내용을 잘 모르고 어디에 썼는지 지출 또 수입 이런 것도 내가 많이 도와가지고 이래 했습니다. 참석자 2 04:24 그러면 아버님께서 이렇게 글을 모르셨던 참석자 1 04:30 그런 그냥 이래 뭐 내가 취급하는 그 정도는 이제 알았지만 참석자 2 04:39 그러니까 뭐 이 동네 회계 볼 정도는 참석자 3 04:43 안되지 안 되지 참석자 2 04:44 아버님께서 이게 아버님께서 어업을 하셨다. 참석자 1 04:49 예 어업했습니다. 농사도 짓고 어업도 했습니다. 참석자 2 04:53 이 어업이라 하면 정치망 참석자 1 04:56 아니요. 정심방 그때는 정치망이 없었고요. 개배 대게배 배 대게배도 탔고 또 이 요즘 꽁치라 그러나 꽁치 꽁치 그런 이래 많이 놀면은 이제 앵메리 앵메리 앵메리 가 가지고 가가지고 이게 무거운 물로 싸가지고 이게 이 건져 올려가지고 수확하는 거 우리 아버지가 그래도 이 오키야입니다. 오키야라는 게 뭐냐 하면 앞에서 고기를 보는 사람 고기를 딱 봐가지고 돌을 가지고 북쪽에 던지고 남쪽에 던지고 딱딱 던져놓고 국물을 여기서 나아가 여기 쫙 둘러싸 가지고 하는 그래서 남이 예를 들어서 선원들은 한 가고 가요. 우리 아버지는 새 가고시 그런 그런 저기도 있고 또 그렇지 그렇지 여기 여기 지금 현재는 이렇지만 과거에 이 백사장이 꽉 길었어 참석자 2 06:10 지금 이리 쪽이 구산 2리 쪽이 원래 다 백 사장이었다고 참석자 1 06:15 딱 백사자입니다. 딱 백사장인데 아무것도 안 가지고 옷만 입고 내려가 가지고 바다에서 들어온다 안 들어온다는 우리 아버지 눈에는 보이는 거라 그래서 매너치가 가에 들어오면은 옷을 하나 가지고 청합니다. 청해가지고 여기서 후리뼈라고 배가 그물을 실어 놨는 배가 있어요. 그래 그 배가 나와 가지고 우리 아버지가 그 고기를 보고 이게 고기니까 싸라 이러면은 그래서 북쪽에서 남쪽으로 쫙 둘러싸 가지고 육지에서 이제 양쪽에서 당겨 가지고 올리면 메르치가 많이 참석자 2 07:03 그걸 그러면 멸치를 그렇게 후릿그물로 잡으면 저기 뭐라고 해야 되나 후리그물로 잡으면 참석자 1 07:13 그걸 선주 거지요. 전부 다 선 선주 건데 전부 다 그걸 통추탈로 전마선에 싣고 와가지고 선주네 집에서 삶습니다. 그거 삶아가지고 포를 하지 않습니까? 죽고 가야 되지 그 삶아 말라가지고 그래가지고 팔고 이래 하고 또 양이 많이 났을 때는 또 선원들을 이제 분배해 줍니다. 예를 들어서 선주는 반을 가지고 가고 반 가지고 이제 우리 아버지는 새 집 개인은 한 짓 이렇게 해가지고 참석자 2 08:01 만일에 근데 후리 꿈을 할 때는 온갖 사람들 그냥 다 붙지 않습니까? 참석자 1 08:06 다 많이 딴 거지 참석자 2 08:08 그러면 그냥 선언 아니고 그냥 땡기는 사람들한테 뭐 안 준 참석자 1 08:12 그 댕기는 사람한테 그것도 후리꿍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 숱한 사람 다 오면 동네 사람 도와주면 어떻게 돼 이제 테두리 안에 20명이면 20명 30명 30명 이제 결석해 놨으니까 그 사람들한테는 이제 한지수 주지마는 다른 사람들은 뭐 이래 좀 이래 반찬 정도 저 사람들 일 많이 했다 싶으면 한 반 가구씩 반찬 정도로 좀 이제 지불해 주지 참석자 2 08:49 선생님. 참석자 2 08:59 근데 선생님 그러면 이렇게 막 도와주시고 하실 때 보면 제가 궁금했던 게 선생님이 아마 저희 선생 선생님이 40 40 30 40년생 아니셨어요 제가요 예예 참석자 1 09:18 37년생입니다. 참석자 2 09:19 37년생 선생님 아버님 이렇게 돕고 할 때 그때 보면 마을 일 보시는 사람들이 아버지를 포함해서 마을 일 보시는 사람들이 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분들이 그러면 예를 들어서 새마을 운동 때 이쪽에 목록 깔고 이랬던 거잖아. 지금 해안가에 있는 도로 이런 것도 새마을 운동 때 깐 걸로 알고 있는데 참석자 1 09:47 우리 아버지가 계실 때는 앞에 해안도로가 딱 되고 우리 아버지가 돌아갔어요. 그러니까 오래됐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그래도 97세에 돌아가셨는데 참석자 2 10:01 아버님은 혹시 몇 년생이신 겁니까? 참석자 1 10:07 0807인강 07 08인가 08 07인강 참석자 2 10:14 1908년생 참석자 1 10:16 예 1908 0 8 0 8 0 7 뭐 이래 나가는 거 07 뭐 이래 나가는 거 참석자 3 10:27 정확하게는 예 참석자 1 10:30 확실히 따져보면 알지만 08 07 이제 나온 거 07 07 나오나 참석자 2 10:42 근데 제가 궁금한 게 조니에가 있고 조니에보다 마을 사람 전체가 참여하는 동중이 있는 거지 않습니까? 참석자 1 10:51 예 도는 중이죠. 지금 알아서 참석자 2 10:53 동중 안에 조니 참석자 1 10:55 준이 해가 형성이 돼 있었지 동주 간에 참석자 2 11:07 그래서 조니에는 동 중에 재산을 관리하는 참석자 1 11:12 재산을 총 이 동네 재산을 관리하고 재산뿐만 아니죠 뭐 참석자 2 11:21 제사도 참석자 1 11:23 제사도 지내고 풍어제도 지내고 참석자 2 11:40 선생님은 그러면 2장을 한 80년대에 보셨던 겁니까? 참석자 1 11:46 66년도 참석자 2 11:49 66년도 19 참석자 1 11:51 구역연도 구역 연도 참석자 2 11:53 그러면 예전에 선생님 젊으셨을 때 20대 30대 때 그렇죠 20대 30대 때 한 30대쯤 되겠네 30대 40대 때 보면 선생님이 상당히 늦게 2장을 보신 편인 겁니까? 아니면 그 당시에도 2장은 좀 나이 드신 분들이 선생님 한 30대 40대쯤에 참석자 1 12:21 내가 이자도 크게 늦게 하지도 않은 셈인데 내가 생활 생활이 내가 하도 바 참석자 3 12:29 그러니까요. 그러니까요. 참석자 1 12:31 잠수기배도 했고 장사도 했고 참석자 3 12:34 그렇죠 이게 신발이면 팔고 참석자 1 12:36 이게 저게 하다 보니까 많이 권유를 해도 내가 조금 늦게 했는 셈이지만 그래도 크게 늦지도 않았어. 참석자 2 12:44 그럼 선생님 젊으셨을 때도 2장은 약간 50대 60대들이 많이 보는 편이었습니까? 참석자 1 12:51 그렇죠 4 50대가 했죠 4 50대가 했는데 참석자 2 12:57 이게 2장 선거를 할 때도 조위에서 누군가를 2장을 추천해 가지고 참석자 1 13:05 그렇죠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참석자 1 13:12 동촌위에서 추천을 해 가지고 동에서 추천해 가지고 면자한테 참석자 1 13:21 올려가지고 참석자 3 13:25 아 참석자 2 13:26 조니에서 추천 그럼 동중에서 사람들이 이렇게 2장을 투표하는 게 아니네 참석자 1 13:32 아니 아니고 예를 들어서 이 사람 있으면 누구 적합하다 적합하다 이렇게 불러가지고 니 할래 또 다른 사람이 하려면 너는 이번에 뭐 했다 다음에 해라 이래 가지고 이 사람을 추천을 해 가지고 동네 이제 어른이 면장한테 가가지고 추천 참석자 3 13:52 축하합니다. 참석자 1 13:53 그래 그러면은 발령을 내줘요. 근데 요즘은 그게 아니고 우리가 하고 있다가 번영회를 번영회라고 이 동네 번영회에다가 위임했습니다. 이장 추천을 참석자 2 14:08 그러면 저기 만일에 새마을 지도자 이런 건 어떻게 뽑았습니까? 예전에는 새 참석자 1 14:14 말을 지도자 옛날에는 이장이 그때 하던 이장이 이 장이 좀 이래 웬만하다 괜찮다 저 사람이 똑똑하고 남한테 말을 건네도 괜찮을 일이다 이런 사람이 이자에 이제 추천을 해 가지고 봤습니다. 참석자 1 14:40 이자에 참석자 2 14:42 그러면 이장님이 이렇게 예 예 이장님은 근데 조니에서 추천을 받아 참석자 1 14:50 받고 새마을 지도자는 물론 동네에서도 그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이런 설이 있고 그리고 또 위장도 같이 경험해 해가지고 참석자 2 15:05 근데 조니에서 새마을 지도자까지 추천하는 건 아니 참석자 1 15:09 가지고 참석자 2 15:10 어떻게 보면 이자인이랑 같이 일을 해야 참석자 1 15:13 그렇죠. 그래서 이자 나이 참석자 2 15:18 그러면 선생님 젊으셨을 때 보면 구산리가 선생님 진짜 20대 30대 때 이렇게 보면 구산리가 어쨌든 큰 동네인데 어떤 점이 제일 이렇게 문제가 많았습니까? 그러니까 뭐 여러 가지 그때는 뭐 이렇게 지금처럼 도로도 잘 안 됐을 때이기도 하고 뭐 여러 가지 참석자 1 15:44 내가 중학교를 여기 평양 중학교 나와가지고 그때는 유학에서 부산으로 고등학교를 참 드물었습니다. 예 참석자 2 15:54 예예예 선생님 부산으로 참석자 1 15:57 부산 가가지고 고등학교를 졸업했거든요. 졸업하고 거기서 졸업해가지고 한 6개월인가 얼마가 있다가 집에 왔다가 또 군대에 나갔어요. 군대에 나갔는데 또 군대에 가도 김해공대학교 졸업해 가지고 부산으로 가가지고 또 3년 34개월 22일을 했어요. 박정희 그때 쿠테타 이 그때 우리 쿠테타 일어나 가지고 제대했다가 다시 복귀해가지고 또 한 20일 금 하고 제대 특명 받아줬지 올해 34개월 22일 했는데 아니 그렇지 34개월 22일이지 3년 그때 군대 생활 3년 했는데 그래가지고 내가 이게 제대가지고 와가지고 이게 늦게 들어왔지 늦게 그러니까 학교 생활을 한 3년 했지 군대 생활 3년 했지 또 이렇저 하다가 부산에 우리 적은 집도 있고 이래 해서 한 그러니까 한 7 8년 있다가 이렇게 들어왔기 때문에 중학교만 여기 다니고 딱 나가가지고 있었던 거야. 그렇기 때문에 잘 그 안쪽의 내용은 참석자 2 17:14 선생님께서 딱 그렇게 바깥에 있다가 들어오니까 구산리는 선생님 어리셨을 때는 크게 달라진 게 없었어. 참석자 1 17:25 크게 달라진 게 없었지 뭐 한 가지 얘는 한 가지는 크게 한 가지죠. 참석자 2 17:31 그러면 오히려 선생님 때부터 이렇게 선생님 들어오시고 난부터 갑자기 이렇게 달라지기 시작한 겁니까? 참석자 1 17:39 그렇죠 많이 신포됐죠. 내가 입문해가지고 도사가 구장에다가 동수를 맡아가지 할 때부터 이 지금 우리 그 아래도 우리가 구경했습니다만 원문하고 수토절 먹이라는 거 참석자 2 17:57 그런 거 밝 참석자 1 17:59 부사 부사가 자 저기 했는데 그거를 심현영이라고 울진군 학에서 신영이가 와가지고 내가 동수할 때 찾았어요. 서류가 옛날에 쓰던 거 목포대학교에서 많이 와가지고 그 서류를 다 디베 내가지고 한문을 아는 사람이 있어야죠. 나도 사실 고등학교 때 중학교 때 우리 일주일에 1시간씩 배우고 고등학교 때는 우리 독일어 배웠거든요. 일주일에 한 번씩 이런 데 한문도 모르는데 그래도 어떻게 좀 알아가지고 그걸 이만큼 찾아내 놨는 걸 내가 그 다 좀 이래 알아 가지고 이거는 몇 년도 누가 했는 거다 누가 했는 거다 이래갖고 그 있던 서류를 찾았는데 심현영이하고 내하고 이게 대전은 저리 하여튼 저 위에 저 아니 아니야 대조름집 하던 손상민이라고 손솔로 손준호하고 내하고 심현영이하고 서희 이 서류를 찾았습니다. 서희가 선유를 찾아가지고 내가 보관을 하고 있는데 태풍이 온다 이래가지고 이 손준호가 내한테 하는 말이 야 김덕수 이걸 잊어버리면 큰일 날 테기네. 참석자 1 19:25 우치더라도 이게 보관해야 된다 해가지고 내가 알아서 구경 가가지고 우리 동네 어른들한테 얘기했지만은 요즘은 재기고지만 그때는 동사지기가 자던 숙소입니다. 거기 다라를 엎어놓고 이걸 열어놓고 이후에 다라를 엎어놓고 내가 밤을 새우다시피 했어요. 그래 가지고 떠내려가면 안 된다고 이래 버리지 마라. 차라리 우리 집에 가져와가지고 내가 막 끌어안고 잘 건데 그걸 못 하고 있다가 새벽 5시에 올라가 가지고 그 문서를 날이 괜찮아가 문서를 그래 보관하고 보관하고 했더니 그래 가지고 이게 활성화가 돼 가지고 참 완문하고 수토 절복이라는 저걸 찾아가지고 그래 우리 동네가 지금껏 아래도 우리 9일 날 저걸 했습니다. 수토사 행사를 했는데 그래 가서 우리가 작년 재작년에 한수원에 지원받아 가지고 우리 서류를 거기 갖다 놓는 게 구경회을 갖다 못 봤잖아요. 약품 처리해 놨다고 안 된다 이래가 못 보고 있다가 이번에 가 봤습니다마는 많이 훼손됐습니다. 참석자 1 20:42 있을 때보다 더 우리도 그걸 간수해 놨고 내가 오동나무 통이 있어요. 오동나무 통 이래 이래 3배 담아가요. 팔러 오는 촌 상주 영주 이런 데서 3배 담아가지고 팔러 오는 그 사람들 상자를 5만 원 주고 사가지고 거기다가 우리가 간수를 하고 있었는데 그래 하계사 심현영이가 안동을 보내야 된다 이래가지고 이럴 적에 내가 옛날에 사육신들 보면은 사육신에 대한 서류가 서산문 평균 유부 유흥부 유항부에 그 그 그 그 내역이 있는 서류가 진품명품에 다가가 1억을 받았다 이런 소리가 있어가지고 내가 심현영이한테 우리 이 서류를 말이지 완문하고 수토 젊은 거라 우리 진품 명품 한번 얘기해야 되겠다. 심유양한테 내가 전화했어요. 우리 동네 거를 이거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냐 이렇게 심준용이가 하는 말이 그거는 개인의 서류지 이거는 매직을 몰아치고 여기서 이제 순풍을 기다리다가 간다. 뭐 쌀 한 가방에 뭐 5원이다 3원이다 맹태 한 때 2원이다 이런 게 하는 게 그거하고 틀렸습니다. 참석자 1 22:09 이런 말도 하고 내가 진품명품에 열려고도 마음을 먹었거든요. 그러다가 그걸 간수를 해가지고 오늘 아래 우리 구경을 하고 왔습니다마는 많이 좀 훼손이 됐습니다. 하도 이걸 많이 남겨 가지고 저 왕무는 뒤에가 마이 마 이래 이게 좀 이 어지럽게 이제 떨어질 그런 우려가 있다. 내가 이게 너무 내가 이게 간수했는 건데 사람이 여기 20명 이상이 있지만 간수를 내가 하고 내가 이게 아끼던 게 되게 너무 많이 훼손됐습니다. 내가 거기서 하기사 보고도 얘기를 했어요. 하 계사가 아무 말도 안 하더만은 그런데 뭐라고 합니까? 우리가 거기서 간수를 대한민국에서 간수를 하고 있는데 그래가지고 우리가 그 구경을 하고 왔지만 하여튼 뭐 그전보다 좀 틀릿해요. 틀리지만은 할 수 없이 그래 구경을 하고 갔습니다. 오늘은 참석자 2 23:10 그럼 수토 절목이랑 그거 완문 말고도 다른 서류도 거기에 다 가 있습니까? 참석자 1 23:17 아 그거 두 가지만 두 가지 여기 많이 있던 거 보니까 옛날에 어른들이 이제 동네 이제 금연 참석자 3 23:25 출락부가 있습니다. 참석자 1 23:29 문조를 참조이를 가지고 하는 두 마리를 막 만들거든요. 그래 가지고 회개도 그리 해 가지고 또 이러고 이런 개가 많이 있어가지고 개쪽에 큰 개 쪽에 이빨이 열어놨는데 그게 만해가지고 우리 선조들이 모르고 그 서류를 불에 많이 태웠어요. 그래 가지고 많이 훼손시켜고 왔는데 심년용이가 와가지고 참 그 사람이 어떻게 해가지고 이 한번 찾아봐야 되겠다. 이거 내하고 손상민이 전화하고 심신영이하고 서희 그 서류를 찾았다 카니까 그래 내 늦게 목포 대학에서 그 해가지고 이장한테 말해 가지고 가가지고 내가 서류 내놨는 게 저게 밖에 하나도 쓸 만한 게 없어. 참석자 2 24:19 근데 저희는 오히려 남겨두신 그 자료를 가지고 이번에 책이 한 권 나옵니다. 다들 엄청 좋은 자료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예 선생님 그러면 뭐야 제가 조금 궁금한 게 예전에 혹시 이 동네에 도로를 포장하자 이러면 도로를 포장하자라고 그러니까 새마을 운동 때 도로 포장도 많이 하고 했지 않습니까? 뭐 그런 일이 있다 그러면 조니에서 그거를 결정하는 겁니까? 그런 건 아니고 아니고 이장이 2장이 참석자 1 25:05 이 안에 포장한 게 내가 했으면 참석자 2 25:07 아니 그전에도 도로가 또 포장이 되지 않았어요. 참석자 1 25:12 장이 안 돼 있었어요. 참석자 2 25:13 그전에는 그러면 길 만 나이 참석자 1 25:15 결박하어 그럴 때 내가 2장 때 내가 면장한테 졸랐지 안에 이게 이 포장을 좀 해주시오. 그래 가지고 이 포장을 안 해 포장을 내가 2장 때 이게 했습니다. 참석자 2 25:29 그러면 근데 그때 포장을 할 때 선생님 만일에 이 길을 포장을 한다 하면 사람들도 좀 오고 어쨌든 뭐 측량하는 사람들도 오고 하니까 그 사람들을 대접한다거나 그런 건 없어 참석자 1 25:43 절대 그런 게 없고 면장한테 건의를 하면은 먼저 이렇게 군에 들어가고 결제가 되면은 청량 해가지고 다 해가지고 그때 막하게 공짜 되게 해줬습니다. 참석자 2 25:55 그러면 측량하거나 이런 거 오면 사람들 그 사람들 여기 왔으니까 밥 한 끼 우리가 마을에서 대접해야 된다. 뭐 그런 건 없었습니까? 참석자 1 26:05 크게 뭐 그런 게 없었어요 없었죠. 그런 게 없고 거기서 관에서 다 해줬습니다. 그때 참석자 4 26:17 그렇게 또 가는군요. 참석자 2 26:21 저는 예전에 한 70년대 60년대 70년대 자료 보니까 마을에 의료반이 온다. 예전에는 보건소가 없었으니까 의료반이 온다. 아니면 예전에 영화를 그렇게 많이 들러 왔다. 영화 이런 거 틀러 오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참석자 1 26:44 영화 오는 사람들이 이 동네 사람들이 있었고 이 동네 사람이 그 영화를 틀어가지고 돈 버는 사람도 있었고 타 지역에서 막 하게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은 그러면 뭐 붓도 있지 아이들 막 하고 그랬지 참석자 2 27:00 그런 거 하면 어디서 모여서 하는 겁니까? 참석자 1 27:03 우리 집 같으면 우리 집이 마당에 다 구했지 참석자 2 27:06 그냥 마당에다가 참석자 1 27:08 마당에다가 마당에다가 참석자 2 27:11 선생님 만일에 예전에는 또 뭐고 저기 국가에서도 영화 틀로 안 왔습니까? 군에서나 뭐 이런 데서 뭐 새마을 운동 관련된 영화나 뭐 그런 거 틀로 안 참석자 1 27:25 틀려오면 그게 이제 사람 독립 사람들이 많이 오게 되면은 이래 동사 참석자 2 27:33 아 동사 참석자 1 27:34 동서 요즘 대풍은 잘돼 동서 풍어제 같은 것도 도사 도사 하고 뭐 이렇게 저렇게 참석자 3 27:44 그럼 참석자 2 27:46 근데 이제 개인적으로 돈 벌려고 영화 트는 사람도 있었고 참석자 1 27:51 그러니까 남의 집 마당이 큰 마당이 이 옆에 집이나 울집이나 마당 큰 집은 오래 있을 수 있거든요. 그랬습니다. 참석자 2 28:04 선생님 그러면 이 동중에 이렇게 보면 뭐랄까 아버님께서도 오랫동안 유사부터 시작해서 이렇게 많이 하셨는데 혹시 아버님이 동중이 돈이 부족하니까 마을 돈이 부족하니까 내가 저기 뭐야 조니애니까 내 이름으로 이렇게 돈이 부족한 거를 좀 다른 데서 빌려가지고 이렇게 막 그러니까 그러니까 부족한 돈 내 이름으로 빌려가지고 이렇게 막는다든지 이런 것도 하셨습니까? 참석자 1 28:45 그건 동네 동수가 있잖아요. 동네 동수가 재정을 책임지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쓰고 동네 돈을 전부 다 동수 책임입니다. 지출 수입 이걸 다 회계사가 회계하잖아요. 시기마다 회개하고 이랬는데 만약에 네 돈이 없다 쓸 돈이 없다면 동수가 남의 집에 빚을 냅니다. 남의 집에 빚을 내면 꼭 이자를 딱 쳐가지고 딱 참석자 3 29:18 감습니다. 그 참석자 2 29:19 그러면 남의 집에서 그 동수한테 빌려줄 때는 이게 마을 마을 일이니까 내가 빌려준다 아니면 마을이 빌리는 거니까 내가 빌려준다 이런 겁니까? 아니면 동수를 보고 이렇게 저 사람 믿을 만하니까 동수 믿을 만하니까 빌려준다 이런 참석자 1 29:39 동네 돈을 쓸 사람인 줄 알면서도 빌려준다니까 동네 끼에 빌려주는 예가 많죠. 그리고 동술은 언제든지 하면 저 사람이 사람이 원래 동수가 누구다 이러면 알잖아 그러니까 그 사람이 능력이 있으면 자기 돈 가지고 빌렸다 이러니까 능력이 없으면 남의 돈을 빌릴 때 동네 돈 쓸 일이다 참석자 2 30:06 그래가지고 그러면 그 동수를 보고 빌려준 게 아니라 이게 동네에서 저 사람이 동수니까 동네 일 때문에 돈 빌리러 왔다 생각하고 빌려주는 겁니까? 참석자 1 30:16 그래 보고 되고 동수를 보고도 되고 뭐 이렇지만은 하면 동네 돈이 크게 부족할 일이 없거든요. 참석자 2 30:26 아니 근데 60년대 70년대 보니까 돈이 이래저래 많이 좀 참석자 1 30:32 많이 써졌죠 많이 써졌는데 그때 그때 보면은 배고플 시기고 뭐 뭐 뭐 이래가지고 그 옛날에 말이 없잖아 있어요. 이 전부 다 무능력하고 아무것도 모르고 이러니까 지출만 생각을 안 하고 수입 자기도 이제 동수가 술 먹고 자고 방탕 좀 이래 하다 보면 자갈론 두 마지 팔아먹는다. 동수 지라면은 잘못하면 자갈론 두 마지 팔아먹는다 이 소리는 납니다. 참석자 2 31:11 동수질하면 자갈 넘 참석자 2 31:20 그만큼 동수가 어쨌든 마을 재정을 책임지는 유산은 신부로만 살아나는 참석자 1 31:31 유산은 심부름꾼이고 동수는 재정 담당이고 시정이는 촌이 어른들을 보필하고 동수를 이제 이제 안내해 가지고 일 시키는 참석자 2 31:53 그러면 조니 어른들의 그 당시의 역할은 어떤 거였습니까? 그러니까 참석자 1 31:58 동네 제반 공론을 하지 제안 동네 행사라든가 제사라든가 제사도 그때는 많았습니다. 정월 보름 3월 초하루 5월 단호 9월 중국 해수욕장 별고사 다섯 가지 아닙니까? 또 저 4년에 한 번씩 부어져 있어요. 뭐 재해도 많았고 힘도 많이 들었어요. 옛날 어른들이 참석자 2 32:40 그러면 참석자 2 33:05 그러면 선생님 제가 이거 잠깐 이름을 좀 참석자 2 33:19 이게 혹시 이게 그 문서에 이런 이름들이 좀 나오던데 안덕주 씨 안덕주 예예 어떤 분인지 아시나 참석자 1 33:30 대추 동네 노인 전후입니다. 안덕주 저 좀 이래 이 동네에서 좀 생활 환경이 있어가지고 좀 잘 살았는 사람입니다. 삶의 능력이 좀 있었던 사람이지 안덕주 참석자 2 33:55 이분은 그럼 어업이나 뭐 이런 거 하셨습니까? 참석자 1 33:58 안 했습니다. 참석자 2 33:59 그럼 농업 참석자 1 34:01 농협도 그게 아는데 확실히 모르지만 장사를 했는지 어쩐지 내가 봐도 뭐 자식 네들은 요즘도 아직까지 있습니다마는 그 큰 저기는 안 합디다마는 확실히는 내가 모르 참석자 2 34:16 안명환 씨는 혹시 참석자 1 34:18 안녕 한 참석자 2 34:19 예 안명환 참석자 1 34:22 안녕 명만이라고 명만이라고 나이가 얼마 안 되는데요. 참석자 2 34:28 이거 70년대 자료이긴 해 가지고 선생님 선생님보다 훨씬 어리신가 보죠? 안명원 씨 참석자 1 34:37 나보다는 나이가 한두 살 많습니다. 참석자 2 34:39 이름이 나와 가지고 그 장부에서 참석자 1 34:42 안명하이가 나 참석자 2 34:43 이거 이거 조니에서 활동 안 하셨습니까? 참석자 1 34:47 전혀 활동 안 했습니다. 참석자 3 34:49 그래서 참석자 3 34:54 먹구리 참석자 2 35:11 이홍식이라는 분 참석자 1 35:12 이홍식이는 이 안에 농사 짓고 뭐 배 타고 이랬는데 이홍식이는 우리 외삼촌이다. 외삼촌인데 예의 바르고 청렴결백했습니다. 아들 대구 대학시켜가지고 대구 교대 시켜가지고 아들 교장까지 하고 참석자 2 35:36 이분은 그러면 원래 여기 구산잎 분이신 겁니까? 참석자 1 35:43 우리 외할머니가 외할머니가 아마 하여튼 내가 알기로도 참석자 2 35:52 구산리 분 참석자 1 35:53 부서예요 부서에 참석자 2 35:54 어 참석자 2 35:59 그러면 구산리 출신도 구산리이신 겁니까? 참석자 1 36:04 그렇다고 될 것 같고 그 전에는 이제 모르게 참석자 2 36:09 이분도 그럼 조니에 활동하셨겠 참석자 1 36:11 예 존입니다. 아주 존이 참석자 2 36:17 그럼 혹시 정재은이라는 분은 정 정재은 참석자 1 36:23 정재은 그분도 노인인데 이 대조리까지 했습니다. 참석자 3 36:33 아 참석자 2 36:36 그러면 혹시 어떤 일 하셨는지 참석자 1 36:40 옛날에는 뭐 배 안 타면 농사 배가 더 지었어 참석자 3 36:45 그렇습니다. 참석자 1 36:48 이 집에 배 선주질도 하고 그래 참석자 3 36:50 오케이 참석자 1 36:51 목선 선주집도 하 정재영이라고 참석자 2 37:02 그럼 안태산이라는 분은 참석자 1 37:05 안테사 참석자 2 37:06 예 안태산 예 안태산 참석자 1 37:09 안태성 안태서 안태성 안태성 저 위 이 위에 있는 사람인데 그 내용을 확실히 잘 참석자 2 37:20 훨씬 선생님보다 위에 분 참석자 1 37:23 그게 이름이지 안테 안테사이 이 아래 안테사인지 누군지 뭐 옛날에 동성 동물 참석자 3 37:31 이름이 좀 참석자 1 37:32 안태상 이 안에도 있는데 내가 누우라고 단정을 해가지고 말을 못하겠네요. 참석자 2 37:43 황덕기라는 분은 참석자 1 37:45 황덕기라는 분은 어디 경주 사람인데 여기 와 가지고 양조장을 했습니다. 참석자 2 37:53 저기 구산역 양조장 참석자 1 37:57 양주동을 황수영이가 하던 거를 매입해 가지고 했어요. 홍덕기 참석자 2 38:08 그러면 원래 이 동네 분은 아니시네요 아니지 그럼 이분도 조니에 하셨습니까? 참석자 1 38:13 조이와의 관계는 못 따라 참석자 2 38:28 정용 참석자 1 38:30 정영식 정영식이는 아까 정재현의 아들인데 여기 대졸업까지 했습니다. 참석자 2 38:38 이분도 그러면 참석자 1 38:39 군 대위로 돼 가지고 고등학교 때 6.25 동란에 가까이 그래 있다가 데임 해가지고 와가지고 참석자 2 38:51 거기서 대위까지 하셨다고요? 그때 들어가셔서 참석자 1 38:55 육군 돼지 그때 전 대까지 있다가 퇴임에 나와 가지고 그 동네 하다가 대전업까지 하고 참석자 2 39:03 어 참석자 1 39:04 정재의 아들 참석자 2 39:06 그러면 이분도 선주나 뭐 이런 거 하셨던 겁니까? 참석자 1 39:10 배 했나 배 그 사람은 아바이 때 배 했지 자기가 손수 참석자 3 39:20 안 했잖아 참석자 2 39:21 한 옥조 한 억조 참석자 1 39:25 한 억지 참석자 2 39:25 예 예 예 참석자 1 39:35 그 사람도 참석자 2 39:39 선생님보다 한참 위에 참석자 1 39:41 아이고 위죠 우리 아버지 아버지 유대 한역종 아버지 유 참석자 2 39:51 그럼 이분은 이분도 그럼 혹시 뭐 어떤 일 하셨는지 혹시 기억하십니까? 이분은 어업도 아니다 참석자 5 40:01 하고 농협하고 참석자 1 40:05 바이 전부 다 했습니다. 옛날에 참석자 3 40:08 다들 참석자 2 40:10 황태술이라는 분은 선생님 근데 대단하시네요. 네 대단하시네요. 형 아니 거의 90이 다 되셨는데 선생님 지금 제가 말씀드리는 분들이 거의 선생님 위에 때 분들인 거죠. 아버지 뻘 참석자 1 40:26 하는 사람들 전부 우리 아버지 참석자 2 40:28 이걸 딱 들으시면 이름 듣고 어떻게 다르마름 기억하셔야 돼요 그게 요 참석자 1 40:36 다른 사람은 모릅니다. 황덕규니 정재은이니 이래봐야 아무도 모릅니다. 가봐야 참석자 2 40:49 그럼 황태술이라는 분은 참석자 1 40:52 황태술 태술이 태술이 참석자 2 40:56 황태술 황 황 한이 아니라 참석자 1 41:00 황태순도 잘 기억이 안 납니다. 참석자 2 41:06 안만수라는 분은 참석자 1 41:08 안만수 안만수는 대조리까지 했고 이 동네에서 아들이 부산공고 나와 가지고 또 의총회장까지 했고 이랬어 참석자 2 41:22 이분도 그러면 뭐 어업만 하신 게 아니라 어업반 농업반 그렇지 참석자 1 41:28 농사 조금씩 있고 하고 과거에는 이 동네가 500호리 600호리 이래도 소 가지고 있는 집도 많잖았습니다. 참석자 1 41:56 다른 사람이 이름 물으면 잘 모릅니다. 참석자 2 41:59 그래가지고 이분들이 저희 장부에 이름이 많이 나오시길래 그래서 근데 이분들이 보면 약간 뭐 이분들이 이분들 이름으로 돈을 빌렸는지 아니면 이분들한테 돈을 빌린 건지 모르겠는데 돈은 어쨌든 돈 중에서 빌려서 빌려서 이게 고 갚았는지 어쨌든 부족할 때 이렇게 이분들이 뭔가 이분들 이분들 이름 있고 얼마 차용금 해서 수입으로 잡혀 있더라고요. 참석자 3 42:31 맞아요. 참석자 2 42:32 그러면 이분들이 무조건 이렇게 생활이 윤택해서 그랬다기보다는 마을 일이나 조니에서 활동하니까 이렇게 참석자 1 42:41 그렇겠죠 그렇죠 조리에서 활동하고 마을마디를 했으니 그 대조는 질하고 다 이렇게 했으니까 참석자 2 42:50 아니 선생님 그리고 어업 같은 거 할 때 보면 선생님 잠수기 어업도 이렇게 많이 하셨지 않습니까? 참석자 1 42:59 내가 한 4 50 참석자 2 43:00 그렇죠 예 보면 이게 수심처 뭐 이런 데들 있지 않습니까? 이 마을 어장에 보면 수심처라고 이렇게 적혀 있고 참석자 1 43:13 수심초라는 거는 미역이 바위에 생겨 붙어가지고 햇빛을 보면 여기가 이제 이제 보덕뽀덕해서 이 말라 놓으니까 이기가 이제 지금 말해서 돌각이라 이런 거고 수심초라는 거는 물 밑에 바위에서 자란 개가 수심초 수심초 수심초 그런데 미역을 두고 하는 말이고 또 수심초 다르게 말하기로 뭐 이래 뭐고 청각이나 또 우물가 사이 참석자 3 43:49 예 예 예 참석자 1 43:50 있는 거를 보면은 수심초는 수심천인데 그걸 수심초라고는 말 안 하고 참석자 2 43:58 수심 초가 아니라 수심 처 참석자 1 44:01 수수 처 참석자 2 44:02 수심 처 한자로 이렇게 이게 수심처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이런 거를 마을에서 아마 입찰을 붙이는 것 같은데 수심처 참석자 1 44:14 수심첩 명바입니다. 내가 말하는 이 이런 게 전부 다 우리 가에서 하는 사람은 15m까지는 가짜이고 수심체는 15m 밖으로 있는 건데 이게 이제 15m 밖으로 깨는 수심처이기 때문에 입찰을 붙여가지고 누가 경전할 사람 해라 이러면은 이제 잠수의 선주들이나 좀 사귀다. 돈 있는 사람이 사가지고 잠수기 배를 열어가지고 여기 그는 여기 많이 났을 때 강원도 사천 다음에는 여기 많이 나가고 여기 돈 98만 원 주고 사가지고 3천만 원 만들었어요. 그때 내가 97만 3500원을 넣었어요. 6500원 차 안 되는데 사람 여기가 동네 어른들이 전부 다 날 하나를 배제시키고 자기네가 단따 해가지고 내가 그때 한정을 했지만은 내가 그때 또 했으면 죽었을런지 몰라요. 이래가지고 50척이 여기 와가지고 했어요. 잠수기 배가 그때 3천만 원 나왔습니다. 그때 또 옛날부터 참석자 2 45:33 98만 원에 입찰 봐가지고 3천만 원 벌었다는 참석자 1 45:37 그런 내가 했던 게 나지만 그런 소리가 참석자 2 45:42 그러면 이게 한 몇 년도 일인가요? 참석자 1 45:45 오래 됐죠 참석자 2 45:48 선생님 한 대략 그냥 얘기한 60~70년대 선생님 한 30~40대 때 얘기 참석자 1 45:54 그렇다고 봐야죠. 참석자 2 45:55 아니 이게 보니까 예전에는 그 장부를 보니까 60~70년대 장부를 보니까 선생님이 아직 동중에서 활동하시기 전에 장부를 보니까 예전에는 어촌계에서 그걸 관리한 게 아니라 동 중에서 이걸 다 관리한 것 같다는 참석자 1 46:16 동네 잠이었지 그러다가 어촌계를 어촌계가 형성이 돼 가지고 그래가지고 어촌계로 넘어갔지 옛날에 다 동네 어 그래 가지고 입찰을 동에서 했지 참석자 2 46:28 아니 선생님 만일에 이 뭐야 좀 특이하다고 느꼈던 게 마을에서 이렇게 잠수기어업이나 이런 거 하다가 사고가 예전에는 뭐 워낙 사고가 많이 났지 않습니까? 많이 죽고 근데 그런 거 할 때 동중에서 이렇게 뭔가 돈을 이렇게 선주들한테 위로금 조로 이렇게 주기도 하던데 그런 건 뭐 어떤 겁니까? 참석자 1 47:04 그런 거는 동네에서 주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동네에서는 개인을 보고 그래 주는 게 없습니다. 개인으로 그건 예 그건 이제 만약에 동 중에 이제 어떤 사람이 우리 예를 들어서 아까 이용식이라든가 이런 사람이 우리 외삼촌 같으면 내가 새 사고를 당하면 이제 이래 줬을란지 몰라도 돈 중에서는 참석자 3 47:27 이렇게 아주 괜찮습니다. 참석자 2 47:30 뭔가 조니에거나 동중에 사람이 다쳐가지고 참석자 2 47:45 만일에 2장이나 이런 사람들이 어디 이렇게 교육이나 이런 거 가거나 아니면 뭐 일 봐야 돼서 면이나 울진 군에 이렇게 가야 될 때 그 비용 처리는 동 중에서 해주는 겁니까? 참석자 1 48:00 비용 처리 즉 말해서 동의를 위해 가지고 갔으면은 예를 들어서 동네 동사무소를 하나 지으려고 군수를 면담하러 갔다. 면담하러 갔는데 차비도 들고 점심을 사 먹었다 이런 거는 빌어가지고 계산하지만은 다른 거는 일절 효용이 안 됩니다. 참석자 2 48:28 그러니까 동일 참석자 1 48:30 동해 일에 관해서 갔으면 하지만 뭐 다른 건 일절 안 되지 참석자 2 48:37 혹시 동중이랑 동해랑 또 다른 겁니까? 참석자 1 48:41 아니 다 같습니다. 동중이라고 하는 거는 뭐 금일봉 이래 가지고 이 때 동중 뭐 이래가지고 어디 부조를 하든지 이럴 때는 그 동중 이래가 동해나 동중이나 같은 말입니다. 참석자 2 49:07 예전에는 여기 뭐 농로가 선생님 어리셨을 때만 해도 농로라고 하는 게 별로 없었나 봐 참석자 1 49:21 없었죠. 여기 여기 물 뒤로 옆으로 올라가면 물 나오는 데 있습니다. 바위에 물 나오는데 그물을 이 우물이 없지요. 수도가 없지요. 이러니까 이 부근에 몇십 집이 그 물을 먹었는데 우리 식구는 결혼해 가지고 하룻밤에 12시가 되면 그거 뭐 10도수 였다 하든가 20도수 였다 하든가 그러겠어 그래가지고 산계곡을 이렇게 타고 올라가 가지고 이렇게 해가지고 황보러 이제 올라가는 길이 있는데 참 과에는 여기도 살기가 힘들었습니다. 참석자 2 50:02 그러면 여기 우물이 한 몇 군데 참석자 1 50:06 요 옆에도 우물이 있었고 구산리의 한 우물 또 저 소속이 한데 내 며칠 이래 저는 데가 또 저게 또 또 참석자 2 50:15 복지회관 근처에 소사골 소사골 참석자 1 50:21 여기는 찬물내기 하는 데고 찬물 찬물내기 참석자 2 50:25 찬물 내기 참석자 1 50:26 우물이 있었어요. 참석자 2 50:29 저 저기 대부문 쪽에는 없어요. 참석자 1 50:31 대포근 쪽에 지금 바람 서 바로 대포 그 밑에 고기인데 그래 그 부근에는 그물을 많이 그래 선호해 먹고 이 부근에도 이 물을 참석자 2 50:44 그러면 그리고 예전에는 지금 구산 2리 쪽은 마을이 없었으니까 사람들이 안 살았던 데인 거니까 참석자 1 50:53 저 밑에 아파트도 없었고 뭐 이거 달동네도 없었고 그러니까 많이 희박해 없었지. 참석자 2 51:03 그럼 지금 살면 거의 여기 조금만 더 내려가면 그 파란색 슬라브 정자 지금 구산 1위 정자 있는데 그 밑으로는 거의 없었던 거네요. 참석자 1 51:14 그렇지 학교 기준으로 해 그 밑으로 거의 없었지 그 달동네도 없었고 아파트도 없었고 뭐 없었지 참석자 2 51:22 그 밑에를 달동네라고 부릅니까? 참석자 1 51:25 달동네라는 게 학교에서 보면 오른쪽으로 그 마을이 안 있어요. 오른쪽으로 참석자 2 51:33 예예예예 지금 구산 일이라고 하는 참석자 1 51:36 부산 일이지 그 그걸 알기 쉽게 달동네 달동네 참석자 3 51:42 아 참석자 2 51:45 그것도 그러면 새마을 운동 이후에 이제 방파제 만들어지고 나서 이제 참석자 1 51:50 그렇겠죠. 참석자 2 51:56 근데 그 땅이 원래 백사장이어서 국가 땅이라는 얘 참석자 1 52:01 아닙니다. 거기는 개인 소유의 밭도 있고 논도 있고 이랬는데 지금도 그 앞은 밭이잖아요. 그 앞은 밭입니다. 뒤에 산에 은둔해가 있는 게 저 산 땅에다가 집 짓고 밭에다가 집 짓고 이랬는데 그 앞으로는 밭이 있습니다. 아직까지 참석자 2 52:24 선생님 아니 제가 궁금한 게 이게 이게 이게 저거지 않습니까? 이게 솔밭이지 않습니까? 이게 이게 지금 이 해수욕장 바로 이게 해수욕장이고 여기가 이제 방파제 들어가는 길이고 여기가 방파제 시작되는 데고 이게 저기 참석자 4 52:51 뭐라 하냐 참석자 2 52:52 솔밭이라 소나무 숲 참석자 1 52:55 소나무 숲은 해수욕장 쪽이지 뒤쪽 산 밑이라요. 산 밑에 나 데 참석자 2 53:02 달동네라는 데가 그러면 요렇게 참석자 1 53:06 예 예 산 밑이라 참석자 2 53:07 이쪽도 그럼 예전에는 원래 사람들이 안 살았던 데 참석자 1 53:12 안 살았지 밭이요 놀고 참석자 2 53:14 그러면 이게 학교 기준으로 이쪽으로 이제 참석자 1 53:18 학교 규직으로 그렇게 서남쪽으로 참석자 2 53:21 서남쪽으로 참석자 1 53:22 학교 기적은 서남쪽으로 참석자 3 53:23 아 저기 참석자 1 53:25 집이 맺혀 있어요. 그걸 다 동네라 그래요. 참석자 2 53:29 여기 산 밑에 바로 밑에 제일 이게 달동네 이것도 근데 이후에 새롭게 생긴 데다 그렇지. 그럼 저는 이쪽도 원래 없었던 거지 않습니까? 이 밑에 아파트 있는데 아파트 있고 뭐야 아파트 주변으로 이렇게 집들이 있어 참석자 1 53:48 그것도 아주 참석자 2 53:49 새로운 동네 그럼 그 동네는 혹시 뭐라고 불렀습니까? 그 동네 이름은 예전에 신촌이라든가 새마을이라든가 이런 이름 참석자 1 53:59 그런 말을 참석자 2 54:00 근데 어쨌든 이것도 새롭게 만들어진 데다 참석자 1 54:03 간혹 띄엄띄엄 한 데서 있었지. 참석자 2 54:10 예전에는 그러면 선생님 이제 막 잠수 기업하고 이러셨을 때는 이 방파제가 어디까지 이렇게 참석자 1 54:18 파지 없었어요 참석자 2 54:19 방파제 그래도 조금 조금씩 만들어졌다고 예전에 말씀하 어디를 주로 방파제가 만들어졌는 건지 참석자 1 54:28 지금 잘 안 돼 거기 꼬리가 꼬리가 이쪽에 참석자 2 54:32 여기가 꼬리 참석자 1 54:34 예 여기가 육지에서 나가고 여기에서 나가고 참석자 2 54:40 여기에서 나가고 이렇게 해서 계속 늘리다 보니까 참석자 1 54:44 가지고 자꾸자꾸 조금씩 조금씩 이제 그래서 우리 배들이 어디 갈 데 없어 비난할 데 없어 가지고 포항을 맨 처음에 비난하다가 참석자 2 54:59 포항까지 갔었어. 참석자 1 55:00 태풍이 온다 하면 포항 피난에다가 그다음에 강구 축산 강군 아니고 죽산 죽산 죽산하다가 내주 사동 하다가 그게 이제 구상이 형성돼 가지고 했지 강구 아니 강 참석자 2 55:19 포항 처음에는 포항 참석자 1 55:22 제일 처음에 포항 그다음에는 죽산 죽산 그다음에 사동 참석자 2 55:27 4동 그다음에 이제 겨우 이제 완성돼서 이제 지금 참석자 1 55:32 구사는 전답했지 애로가 많이 했어요. 그때는 또 목성이고 이럴 때는 뭐 잡아당겨 올라놓고도 하고 했지만 기계뼈를 뽑아 먹을까 봐 축산까지 가는데 배 사람들은 그 갇혀 있고 나는 시코미 해 가지고 돈 가지고 찾아 나가고 옛날에 참석자 2 56:01 죽산이면은 저 위에 아닙니까? 참석자 1 56:05 직사 요 밑에 참석자 2 56:06 직산 직산이 직산 태풍 온다고 하면은 태풍이 제일 무섭네요. 참석자 1 56:15 새벽에 온다고 그러면 배 뽑아 먹기 일쑤지 뭐 내 해일이 밀어가지고 여기 배 뽑아 먹었잖아요. 참석자 2 56:23 아 그러십니까? 참석자 1 56:23 여기 부산 한 번 해일이 들어와가지고 배가 8채 막 뒤엉켜가지고 빠져가지고 수산과장이 여기 저 주둔해 있고 군수가 와가지고 해가지고 우리 한 분 오직에 해봤습니다. 참석자 2 56:42 선생님 그럼 배에 그렇게 사고 나신 적이 언제쯤인 겁니까? 그게 참석자 1 56:48 내가 그 대도군을 그래가지고 대도군을 새로 지었는데 오래 됐어요. 해일이 와가지고 여기 해일이 와가지 해일이 와서 해일이 와가지고 참석자 2 57:02 그건 뭐 70~80년대 60~70년대 얘기를 참석자 1 57:05 그 정도 될 겁니다. 참석자 2 57:07 선생님 뭐 한 40대 참석자 1 57:09 그래 안 됐겠습니까? 참석자 2 57:22 그만큼 이게 여기가 태풍 태풍이 무섭긴 무섭네. 부산 참석자 1 57:27 태풍 오면 막 빠른 줄 알잖아요. 이 방파제 해놓으면 이렇지만 지 앞이 회사 전화가 남서풍이 남풍이 온다 이러면 막발이 조릅니다. 막발이 돌면 내 어릴 때요 우리 저 앞에 앞에는 집이 하나도 없었는데 바닷물이 우리 우리 개울까지 돌았어 바닷물이 어릴 때 바닷물이 치어가지고 들어오고 어디 아픈 집이 하나쯤은 있었습니다. 집이 없었습니다. 참석자 2 58:01 아니 구산리는 전기는 그럼 혹시 언제 들어오 참석자 1 58:05 내가 그걸 기억 못합니다. 전기 하여튼 돌아가지고 정기가 돌았기 때문에 참 좋았는데 참석자 2 58:12 상하수도는 예전에 보니까 70년대 말쯤에 들어온 걸로 보이던데 참석자 1 58:18 그렇죠 상하수도가 들어오기 전에 개인이 말뚝 박아가지고 수도 이래 집에 이 손으로 실어가면 우리도 저 옆에 수도 실려가 먹었거든. 참석자 2 58:32 개인 집 안에 참석자 1 58:35 개인 집 안에 수도 개인 참석자 2 58:36 관정 파가지고 참석자 1 58:38 관증 파가 아니고 기술자들이 와가지고 관정을 파이프를 내놨잖아. 그래가지고 물이 들어오면 돈 얼마 그때 뭐 30만 원 이래 되고 얼마인데 하면 그거는 잊어버렸습니다. 그래 내려오면 물이 들어오면 물이 터졌다 하면 오케이 해가지고 그 저 막았습니다. 참석자 2 59:00 그러다가 이제 상하수도 들어오고 참석자 1 59:03 그래가지고 많이 가지고 있다가 많이 가지고 있었지 있다가 사과수도로 들었지. 참석자 2 59:13 그전에 그것도 그것도 하기 전에는 선생님이 아마 어리셨을 때는 저희 찬물내기 가서 참석자 1 59:21 물 따라 참석자 2 59:22 그건 마을 사람 전체가 먹는 물인가 그러니까 이 밑에 쪽 사람들이 참석자 1 59:27 부근 사람들 다 먹었지. 참석자 2 59:30 그럼 주로 식용수로만 씁니까? 아니면 참석자 1 59:34 아니요 뭐 다 쓰지 식용수도 되고 빨래 빨래도 거기서 참석자 2 59:41 찬물 내 약 참석자 1 59:42 벌리가 앞에서 빨래 했고 밑에 또 호강 좀 한 게 있어가지고 거기서 했고 이렇게 되는데 오래 돼 가지고 그런 걸 다 잊어버리고 모릅니다. 참석자 2 59:54 빨래도 이렇게 하셨고 그럼 그러면 그 차블랙에 이렇게 우물도 있었던 그가 이거 이거 이렇게 파져서 이렇게 처져서 참석자 1 1:00:04 이렇게 파 가지고 이제 여기 가지고 위에서 이제 바위에서 이제 물이 이렇게 흘러내려오는 게 보였어요. 참석자 2 1:00:16 그럼 이 우물 청소 같은 것도 하고 그랬습니까? 날 잡 참석자 1 1:00:20 날 잡아서 했지 뭐 좀 이래 보내고 깨끗하게 아무래도 벌팡질 게 뭐 거기도 찌고 뭐 말 못하면 볼 여지도 있었을 거고 배미도 그리 당겼을 거고 뻔하지 뭐 그렇지만은 이 한 번씩 전습해서 그러다가 또 물 우물이 나왔잖아요. 홍골 해가지고 땅 밑에 그거가 요 옆에 또 있었어요. 하나 참석자 2 1:00:56 우물을 새롭게 판 이 공구리 친 우물 참석자 1 1:00:59 몽구리 웅구리 밑에 사르락 내려와가지고 물 올리니까 그 우물 하나 또 여기 앞에 있었어 참석자 2 1:01:07 어디쯤에 혹시 지금 어디쯤 참석자 1 1:01:09 바람 바람 하나 한 집 우리 집 있고 아래채고 그다음에 그다음에 앞에 참석자 2 1:01:22 그러면 이 선생님 집 앞으로도 지금은 지금은 집이 있는데 예전에는 집이 없었군요. 참석자 1 1:01:30 맨 처음에는 집에 없었지만은 좀 어느 정도 되다가 이런 집들이 들어서 있는데 그걸로 물이 들어와가지고 모래를 산점같이 앞에 이제 태사같이 자꾸 쌓잖아요. 물이 넘어오지만 그래도 그리 물이 넘어가고 마다에 풍족이 되고 화장실이 있었는데 그리 물이 들어가가지고 화장실 문이 넓고 막 그랬어. 그 집에도 소가 있었고 우리 집에도 소가 있었는데 소 마을에 가보면 기가 막히고 이랬지 참석자 3 1:02:02 아이고 참석자 2 1:02:04 진짜 방파제가 진짜 큰 참석자 1 1:02:06 큰 사업이죠. 큰 사업이죠. 시골은 방파제 같은 거 없었으면 이 동네도 뭐 전멸 됐지 뭐 앞에 집 생겨 내니까 무슨 모성이 옛날에 태풍이 오면 감상도 못 했는데 뭐 막 휩쓸고 가는데 뭐 참석자 2 1:02:24 구산리가 그러면 다른 동네 가기로는 가기에는 좀 편한 동네였습니까? 어땠습니까? 예전에는 참석자 1 1:02:31 다른 동네보다 마을이 크고 또 예를 들어서 이 한국가 좋기 때문에 이제 어업도 하기가 좀 좋았고 참석자 2 1:02:42 근데 다른 동네로 그걸 뭐 항구에 들어오면 생선을 팔러 가거나 뭐 이래야 되는데 그러기에는 선생님 막 잠수 기업이나 이런 거 시작하셨을 때는 어떠셨는지 참석자 1 1:02:56 청계라 있었어요. 참석자 2 1:02:58 그러니까 여기서 물건을 산 그러니까 여기서 출항을 해서 구산리로 들어와서 생선이나 아니면 잡은 거를 이제 팔러 다녔는지 참석자 1 1:03:11 입사를 했죠. 참석자 2 1:03:12 어디서 입찰을 하는 건 참석자 1 1:03:13 이 조합이 있었습니다. 참석자 2 1:03:16 그거 근데 구산어업 조합 참석자 1 1:03:19 후포수협 구산어청계라고 울진군 후포수협 구산어청계 참석자 1 1:03:33 그래 있었어요. 참석자 2 1:03:40 그럼 여기 구산리에도 위판장이 있었던 겁니까? 참석자 1 1:03:44 그렇죠 있었죠 맨 처음에는 없었지만 어느 정도 이렇게 돼 가 참석자 2 1:03:50 맨 처음에 없었을 때는 참석자 1 1:03:53 없었을 때는 상인들이 그냥 보고 막 참석자 2 1:03:57 여기 구산님 와서 참석자 1 1:03:59 우리 배가 들어오면은 사인 매치가 이제 해삼이라든가 예를 들어서 멍기라든가 뭐 이런 게 있으면 매치 그래 의논해 가지고 그 입찰해가지고 단가가 높은 사람 죽었다고 이래 참석자 2 1:04:15 그럼 여기 와서 입찰을 상인들은 참석자 1 1:04:19 형성이 안 될 지에 참석자 2 1:04:21 그때도 근데 제가 찾아보니까 구산 어업조합인가 있었던 것 같아 참석자 1 1:04:29 구산리 법인에 청계라고 있어. 참석자 2 1:04:32 어업 조합이 참석자 1 1:04:34 후포 수협 구산리 참석자 2 1:04:37 어촌계 만들어지기 이전에 어업 조합이라는 건 없었습니까? 참석자 1 1:04:41 어업 조합이 아니고 어업 조합은 높은 데는 후포 어업 조합이고 여기는 후포 어업조합 구산 법인을 참석자 2 1:04:51 법인 오청 참석자 1 1:04:52 법인 천 개 참석자 2 1:04:53 그래도 법인이었네요. 참석자 1 1:04:55 그걸 붙여야 되지. 참석자 2 1:05:03 아니 저희 보니까 어촌계랑 동중이랑 이렇게 관계가 상당히 이렇게 활발했던 것 같긴 한데 참석자 1 1:05:12 다 됐습니다. 참석자 2 1:05:14 옛날에도 참석자 1 1:05:15 옛날에도 만약에 내가 알기로도 안수연 씨가 이게 동네 대조리를 하고 이럴 때 동네 동이 없어 가지고 풍어제 했는데 돈이 모자를 때 청계장 불러가지고 동네 잘 따는 게가 어촌계에 잘 따는 일이다. 그러니까 어촌계에서 돈을 예를 들어서 천만 원이다 얼마다 이래 주면은 동네에서 부거제를 해야 될 게 아이가 이래가지고 어촌계하고 거래를 해가지고 그래 쓰고 요즘도 뭐 돈이 부거제라 이러지만 어촌계에서도 많이 활약을 해 가지고 그냥 접하고 있습니다. 참석자 1 1:05:59 나이는 구산동에 부문장 참석자 3 1:06:01 내년이요 몇 월 달에 좀 할까요? 참석자 1 1:06:04 음력 9월달에 합니다. 음력 9월 왜 그러냐면 음력 중구 음력 중구 9월 중구 날 날짜 받으러 갑니다. 언제든지 9월 중국 날 아침에는 퇴계를 하러 갑니다. 참석자 3 1:06:24 꼭 한번 와야 돼요. 참석자 1 1:06:26 5년에 한 번씩 합니다. 4년 지나고 5년에 하니까 만 4년이 지 참석자 2 1:06:39 선생님 여기서 울진 여기서는 논에다가 논 농사 끝나고 나서 보리 농사는 뭐 안 짓죠? 안 짓습니다. 보리 농사는 반 농사로 짓는 참석자 1 1:06:51 예 반 농사를 짓다가 이제는 모두 보리 농사 일절 안 합니다. 그리고 동리가 이제 막 마카크 이렇게 되니까 수산업에만 자꾸 이렇게 전진하다 보니까 논도 붙이는 사람이 없고 논도 많이 팔고 뭐 논은 이 동네에 가지고 있는 사람 몇 안 됩니다. 전부 다 배로 배 쪽으로 막 이렇게 이야기 하다 보니까 또 의자이라는 게가 있어 가지고 의장을 30명에서 20명에서 주주로 해가지고 이래 참석자 2 1:07:27 정치망어 참석자 1 1:07:28 정치방 할 때도 이게 한 집이 논 한 말 반씩 다 안 들어갔습니까? 2 3천만 원씩 들어가 가지고 다 실패하고 다 돈 벌는 사람도 있지만은 참석자 2 1:07:42 정치 망해가 참석자 1 1:07:43 정신만 해가지고 먹고살기 빳빳하고 뭐 다 이랬는데 다 그래서 한 둘이는 정치망해가 팔자 고치는 사람도 있긴 있지 아껴야 하는 안덕주 참석자 2 1:08:01 안재은 정재은 참석자 1 1:08:04 아니 아니 안 안 모으라고 나오던데 안덕주가 참석자 2 1:08:10 안덕주 안덕주 씨 아까 생활 환경이 있어서 좀 잘 산 사람 안덕주 참석자 1 1:08:20 안턱주 안덕주 참석자 2 1:08:23 이분들이 이게 좀 생활 나아진 게 정치 참석자 1 1:08:27 그들이 조금 옛날에 잘 사는 사람들이라고 이래가지 그래가지고 돈 거래도 안 해 그래 그래 안덕주 아니 아니야 아니 내가 이제 말하냐 안일주 아들이 안태수가 지금 제일 어장해가지고는 참석자 2 1:08:47 안태수 씨가 참석자 1 1:08:48 안태수 안태수가 의장을 해가지고는 성공했는 사람은 안태수밖에 없을 거야. 참석자 2 1:08:57 안 참석자 1 1:08:59 태수라고 그 참석자 2 1:09:00 안덕수 만수 안 만 참석자 1 1:09:03 안만수는 안만술은 논도 있었고 밭도 있었지만 안만수 아니고 아 지금 참석자 2 1:09:12 안덕주 안명환 참석자 1 1:09:16 안명아이도 잠수부 지도했고 참석자 3 1:09:18 문제도 아니고 참석자 1 1:09:20 그 얘기 안 참석자 2 1:09:21 안태산 참석자 1 1:09:22 아니 아니 일주라고 아니 일주 아들이 지금 참석자 3 1:09:26 아 참석자 1 1:09:27 제일 몇 억 가지고 있지 제일 낫지 어장 해가 서고 한 사람은 거짓 참석자 2 1:09:37 안일주 선생님 아들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 모르겠네. 참석자 1 1:09:48 그는 한 일주 덕주가 아니고 일주 참석자 2 1:09:56 선생님 뭐 매번 와가지고 불쑥불쑥 전화드리고 막 이러는데도 항상 말씀 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참석자 1 1:10:04 내가 아는 데까지 해줘야 돼. 내가 억지로 솔직한 말로 잘 모릅니다. 참석자 2 1:10:09 예. 진짜 그런거요. 참석자 1 1:10:10 이름이 하나도 모릅니다. 참석자 2 1:10:11 예. 진짜로 참석자 1 1:10:12 말은 정재은이 안덕주니 이 아무도 모릅니다. 내가 이렇게 서류 이를 찾아내 놨는데 그 손자수 할아버지 나 얼굴도 모릅니다마는 그 양반이 보수라는 문서가 있대. 이 송 개수가 이제 이 동네서 오야봉인데 양도 할마이라 이거 누구 뭐 젊은 사람 아는 사람 있나 내가 나도 그 말만 되는 참석자 2 1:10:37 그래도 그걸 다 기억하시고 하시는 게 대단 참석자 1 1:10:41 그래가지고 이타 이런 사람이랍니다. 내가 그렇게 말해줬어요. 참석자 2 1:10:46 바쁘신데 이렇게 또 맨날 잘 대답해 주. clovanot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