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08_울진 구산리 한태성 2025.01.27 월 오전 9:42 ・ 66분 6초 이민재 참석자 1 00:00 근데 이 새마을 운동 전성기가 지금 뭐 한 참석자 2 00:06 50년 전쯤 됩니다. 참석자 1 00:08 그 정도 되는데 우리가 뭐 아주 어릴 땐데 참석자 2 00:13 이거 어릴 때 기억이라도 좀 있으신가 해가지고 참석자 1 00:16 그때 기업은 아시다시피 이거 지붕 계란 참석자 2 00:21 아 참석자 1 00:22 초가집을 가지고 지붕을 다 용마름으로 엮어가지고 그래 그 집을 비 관계 뭐 이런 관계를 그런 옛날 재래식으로 하다가 새마을 운동으로 생활 군드롱으로 말미암아 이제 마가다 집집마다 가가호호 마가다하고 슬레드로 이제 다 교체를 했지 참석자 2 00:52 예전에 이 초가집일 때 선생님 어리셨을 때 초어떻게 보면 초등학교 때만 돼도 아직 초가집이었던 거냐 이 초가집은 언제쯤 이렇게 좀 거의 없습니다. 참석자 1 01:14 조가 집이 참석자 2 01:15 아니요 아니요 초가집이 언제쯤 이렇게 지붕 교체를 한 1년마다 연마다 하는 건지 아니면은 저기 그 참석자 1 01:26 여기네 참석자 2 01:27 한 2년마다 하는 건지 참석자 1 01:29 지붕에서 이제 새마을 운동으로 전환한 시점이라 한꺼번에 다 안 되고 그것도 다 걷어내고 막 걷어내고 위에 쫄대 나무 다 대 가지고 그래가지고 이제 교체를 다 했는데 일순간에 다 안 되고 몇 년 걸렸죠 참석자 2 01:54 그 참석자 2 01:59 그전에 제가 여쭤보는 거는 지붕에 초가지붕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 초가지붕은 해마다 교체해야 되는 겁니까? 아니면은 2년에 한 번씩 참석자 1 02:12 해마다 했지 해마다 한 꺼풀 걷어내고 걷어내고 또 올리고 그대로 또 올린 사람도 있고 참석자 2 02:20 한 꺼풀 걷어낸다는 게 제가 초가지붕을 이제 몰라서 참석자 1 02:27 근데 그때는 이제 젊은 사람들이 이제 동네 다 이제 있어가지고 집집마다 이제 같이 이 품앗이라 할까 서로서로 도와가면서 이제 이 집 한 번 하면 이 집 안 가지고 이제 준비 싹 해놨다가 새끼고 이제 용마름이라는 게 이제 집을 가지고 자꾸 연결 연결해가지고 이렇게 둥그랗게 이 몇 개를 만든다고요 그래가지고 그거를 이제 사다리 타고 올라가 가지고 이제 그거를 또 뺑 돌아 돌려 계속 돌려 돌려가지고 이제 어느 정도 이제 새끼를 이제 중간에 쫙쫙 서로 메가지고 거기에다 이제 용마란 지을 그거를 이제 당가가지고 그거를 메가지고 안 내려가도록 이렇게 경사 졌으니까 그래가지고 이제 쭉 해가지고 새끼를 가지고 또 이제 얼지 바람이 안 날 참석자 2 03:23 그렇게 얼어 놓는 게 이제 그 지붕 교체하는 방법이 그러면 이거는 주로 어떻게 겨울에 많이 참석자 1 03:35 하셨겠네요. 그렇지 왜 그러냐 하면은 가을에 추수를 해가지고 볏집이 있어야 되거든 가을에 추수를 해가지고 탈곡해 가지고 그 집을 다 보관해 놨다가 이제 농번기가 끝나면은 일손이 이제 다 놀 때 놀 때 이제 품마시로 이제 젊은 사람들이라 돌아가면서 이 용마름 참석자 3 04:00 아 저 잠시만 참석자 2 04:03 아 아 예예 저기 예 예 예 참석자 4 04:07 옆에 왼쪽에 참석자 2 04:08 누구 저희 같이 연구하던 분이 원래 찾으려던 분 손 만두 선생님 손 만두 선생님 댁을 못 찾은 것 같아 가지고 찾으셨나 참석자 5 04:25 또 송만 선생님 참석자 1 04:26 안녕하세요. 아니요. 손바닥 안 계시면 돼요. 참석자 5 04:30 저기 집에 가 보니까 안 계셔가지고 혹시 한 선생님이 참석자 2 04:34 한성택 한태성 선생님 참석자 5 04:37 송만주 선생님 댁 옆에 참석자 5 04:43 손만주 선생님 안 계셔가지고 선생님 댁 찾다가 왔습니다. 참석자 1 04:47 아니 아니 앉았어요. 참석자 2 04:51 그러면 농번기 끝나고 나서 이제 추수 탈곡하고 다 끝나고 나서 이렇게 할 수 있는 거네요. 네. 근데 예전에 보면 집갈이라고 이렇게 집 모아두는 그런 것도 있지 않았습니까? 이제 집 짚을 그냥 막 놔두는 게 아니라 그냥 쌓아두는 게 아니라 쌓는 방식이 이렇게 있는 거잖아 그치 여기는 어떻게 쌓아 참석자 1 05:17 여기는 탈곡해가지고 별을 베가지고 쭉 이제 물이 없는데 쫙 갑니다. 깔아가지고 건조를 다 시켜가지고 건조시켜 탯다이라고 테다이라고 이만하게 묶어요. 이렇게 묶어가지고 이제 둥글게 이래 밑에는 이제 이 면적대로 쫙 하고 올라가면서 이제 피라미드식으로 요래 되지 이래 가지고 쭉 높이 싸가지고 이제 그 위에다 또 이제 짚을 가지고 비 안 들어가게끔 그렇게 해가지고 참석자 2 05:51 약간 지붕 같은 거를 참석자 1 05:52 예 이렇게 경사지에 맨 위에는 지지로 그런 식으로 해가지고 보관했다가 이제 시간 날 때 탈곡해가지고 참석자 2 06:01 이제 약간 이런 형식일까요? 이렇게 쌓았다가 이 지붕이 이렇게 있는 형식 근데 이게 제가 잘 진짜 잘 몰라서 그런데 초가집이면 제가 그냥 말씀 들었을 때는 이게 어쨌든 많은 기술을 좀 필요로 하는 것 같은데 참석자 1 06:23 약간의 기술이 동반돼야 돼요. 참석자 2 06:26 예 그래서 혹시 이게 그 집에서 집안 사람들이 무조건 다 해야 되는 건지 아니면 좀 잘하시는 분이 있으면 그분한테 좀 그분은 좀 품값 줘가지고 살짝 불러서 그분 중심으로 해서 이렇게 참석자 1 06:39 그런 식으로도 되고 지금 요즘 세대도 같이 이거 이제 연로하신 분만 계시는 집에는 젊은 사람들이 이제 가가지고 도와주 참석자 2 06:51 그냥 무릎 참석자 1 06:52 이런 데는 도와주고 또 그런 개념으로 했지 뭐 일해줬다고 돈을 받고 이런 거는 참석자 2 06:59 지붕 여는 거 정도로는 참석자 1 07:02 그거는 뭐 돌아가면서 하니까 그 일을 할 때 막걸리도 사가 대접하고 다 끝나면은 그런 식으로 하지 그때만 해도 이거 정이란 게 너무너무 좋았거든요. 안력도 없고 지금 세대도 같이 이런 게 아니고 지금은 뭐 땅 청량해가지고 내 땅이니 니 땅이니 이 드라블 많지만 그때 시절만 해도 아이고 좀 더 가 하면 어떻나 내게 없이 그런 세대였어요. 참석자 2 07:36 선생님 혹시 한창 이제 새마을 운동하실 때 딱 중고등 고등학교 중학교 참석자 1 07:47 그때만 해도 우리는 초등학교 참석자 2 07:50 초등학교 70년대 초반이면 초등학교실까요? 참석자 2 08:00 그러면 저기 선생님 혹시 집안 대표로 뭐 이렇게 마을에 부역 나간다거나 뭐 그런 기억은 없으시겠네요 참석자 1 08:14 그런 거는 우리가 이거 7번 도로에 국도에 그때 비폐장 버스가 다녔어요. 버스가 다녔는데 이제 반음별로 반반 반별로 이제 구역이 있어요. 도로에 가면은 이 건너 꺼 가지고 도로 많이 파이면은 자갈을 퍼가 와가지고 그 메꾸고 이거 다 우리 다 했다니까 참석자 2 08:43 어리셨을 때도 참석자 1 08:46 우리도 이제 어렸을 때도 참석자 2 08:47 이 자갈 같은 건 어디서 구 참석자 1 08:49 그래 그래 내과 같은 데 참석자 2 08:52 여기서 내 거면 황복천 이런 데까지 참석자 1 08:55 부천 그렇지 참석자 2 08:59 이런 걸 들고 와 가지고 메꾸고 하는 게 요즘이면 다 장비 참석자 1 09:07 그래도 하지만 그때는 다 일렉이라 참석자 2 09:10 혹시 뭐 또 따로 기억나신 거 없으니까 한창 많이 했을 때 보면 퇴비 증산 정책 이런 것도 하긴 했던데 참석자 1 09:20 퇴비 정산도 이제 이 풀을 베가지고 이제 몇 킬로 이 있어요 진보따리 어이 이렇게 어떻게 해라 그렇게도 했고 또 그 나머지 이제 이거 연탄이 연탄도 없었지 다 화목으로 다 이제 조수구를 끼리고 이제 소 죽도 이제 길고 수는 다 이제 화목 나무로 했지. 나무를 이제 지게로 지고 이제 하다가 지게가 이제 힘드니까 그때 리어카가 나왔다고 참석자 2 09:56 저기 새마을운동 춤에 리어카가 나왔어 참석자 1 10:01 그렇죠 그래가지고 리어카를 없는 집이 없었지 그래 가지고 이제 아가씨 밭을 이제 어느 정도 사가지고 몇 집이 이제 이래 가가지고 그걸 다 비 가지고 지지 마 참석자 2 10:17 아시바이라는 게 완전히 아카시아 바 참석자 1 10:20 아까 시아 나무 참석자 2 10:22 아 참석자 1 10:23 그거 이제 막 배가지고 이제 그거는 뭐 하면 그렇게 돼도 소나무 같은 거는 이제 면에서라도 이제 못하게 하고 그렇게 하니까 이제 주로 이제 여기는 나무와 화목이가 아카시아 나무 아까 시아 나무로 가지고 주 이제 화목 밥 해 먹고 이거 방 치우고 이제 그렇게 다 했죠. 그러다가 이제 연탄이 나와가지고 연탄이 이제 연탄으로 이제 다 이제 뭐 연탄으로 바꾼 집이 많았지 참석자 2 11:04 연탄으로 바꾼 건 한 언제쯤 참석자 1 11:07 그 시기가 이제 뭐 우리가 뭐 중고등학교 다닐 때 중학교 다닐 때 그래 시대 변체가 그래 갔대요. 그래 가 가지고 가다가 가스 사고도 많이 나고 그러니까 이제 뭐 그것도 힘들고 이러니까 뭐 이제 또 기름 보일러로 이제 전환했지 참석자 1 11:34 시대 벤처는 뭐 그때만 해도 순 인력으로 다 했고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그때는 이제 주로 여기 부산 지역에서는 이제 잠수기 구리 머구리 배라는 게 있었어요. 그때만 해도 이제 여섯 사람 7 사람이 이제 승선 내년이 그래 타가지고 이제 기술자는 이제 잠수부지 머울리라고 머울리라고 이제 그래 하다가 그때는 이제 사람들이 인력으로 다 공기를 공기를 내어주는 데가 이제 이 사람이 이 인력으로 다 했다고 그때 사람들만 해도 영양 가치 없는 게 뭐가도 힘도 셌고 그때만 해도 요즘 같으면 그런 일을 하라고 해도 못해요. 참석자 2 12:27 그런 모구리 배나 이런 사람들 오면 모구리가 완전히 기술자 그렇거든 참석자 1 12:35 그 사람이 이제 선원들도 선주가 있고 선주가 있으면은 선원이 있고 선원이 있으면은 머구리가 있고 머구리 뼈는 글자 그대로 머구리가 잘해야 돈을 좀 더 벌고 좀 못하면은 좀 덜 벌고 그때만 해도 이제 어촌에는 농촌이 아니고 여기는 한 30%가 농사 짓고 한 70%는 이 어업에 종사했거든. 어업에 종사했는데 거기에 보면은 그때만 시절만 해도 여기에 이 모구리 뼈가 이제 며칠이나 하면은 한 28척에서 한 30 몇 척이 됐어요. 그러니까 뭐 그때만 해도 주 소득이 미역이라 봄철에 봄철에 미역을 해가지고 그때만 해도 이거 뭐 어떻게 너는 건조하는 시설도 없고 이래가지고 이 모래 바닥에 모래바닥에 쫙 내려가지고 바람 불면 날아가지고 바닷가 물에도 들어가고 날이 나니까 건조되면은 가벼우니까 바람 되게 불면은 막 바다로 다 날아가고 막 이런다니까 그렇게 해가지고 이거 뭐 장사가 또 한 번씩 들어오면은 참석자 2 14:02 미역은 근데 그 낫으로 제쳐 참석자 1 14:07 모구리가 들어가 가지고 밑에 들어가가지고 이제 나으로 비가 아니고 이 망태기라는 게 있어요. 그리로 여가지고 이 신호해 가지고 올라주면은 이제 위에서는 다 받아가지고 탁탁 재고 참석자 2 14:20 머구리가 들어가는 데랑 해녀들이 들어가서 미역 채취하는 데랑 좀 다른 참석자 1 14:27 그때 시절만 해도 해녀는 아예 없었고 참석자 2 14:31 이게 말씀하시는 게 한 지 1960년대 70 참석자 1 14:36 예 60 70년대 해녀라는 분들은 없었고 주로 이제 뭐 머구리 배지 미역 생산은 다 먹구리배로 하고 요 가에 수심이 이제 1 2 1m에서 한 3M 사이에는 이제 그것도 기술자가 있어요. 수경 발이라고 이렇게 수경이 이렇게 이렇게 만들어진 게 있어요. 밑에 밑에는 유리고 오동나무 가지고 이렇게 내어지게 이렇게 만들어 삼각형으로 참석자 2 15:12 이렇게 이런 식으로 되어 있는 참석자 1 15:15 이 밑에는 유리고 여기서 이제 이렇게 보면서 이제 나가고 이 사람들 잘해 기술자라 참석자 2 15:23 이분들은 그럼 동네분들이 아니라 동네 동네 분들 참석자 1 15:27 우리 지역분 그러니까는 이제 노 젓는 사람 한 사람 있고 이제 앞에서 미역 끊는 사람이 한 사람 있고 참석자 2 15:34 그러면 이 사람 이분들은 저분들이겠네요. 그러니까 배는 떼배 그렇지 참석자 1 15:40 작은 전마선 선 전마선으로 이제 두 사람이 타고 이제 미역 채취를 했지 참석자 2 15:49 한 사람은 이제 노 젓고 한 사람은 이라고 그러면 그때는 좀 기다란 참석자 1 15:55 예 장대 대나무가 참석자 2 15:56 그걸 뭐라고 불렀습니까? 참석자 1 15:59 그거를 이제 나 때라야 되지. 밑에 이제 철근가이고 나 따라 가지고 이제 조업 간다고 그러면은 이제 간다고 잘 들게 잘 들게 갈아가지고 이제 명치죠. 그렇게 그 몇 년을 수십 년 했지 그것도 수십 년 하다가 이제 그도 이제 힘드니까 이제 제주도에서 해녀들이가 이제 오게 됐지 그래가지고 이제 그 해녀들이 우리 지역으로 와가지고 결혼했는 사람도 있어요. 참석자 2 16:37 그럼 이 제주도 해녀분들이 온 거는 참석자 1 16:40 제주도 아니고 저 양포 뭐 이런 데서 이런 데서 이제 여기에 아무도 해녀가 없다 보니까 쭉쭉쭉쭉 올라오다가 울산 양남 이런 데 분들이 올라와 가지고 여기 오면 그렇게는 뭐 전복도 있고 해산물이 많았어요. 왜 그때만 해도 뭐 손 대는 범위는 넓고 생산은 많이 나고 그 채취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해녀분들도 여기 와 가지고 돈도 많이 벌고 결혼도 여기 와 하고 이래가지고 지금도 뭐 여기 가면 해녀들 부분 계세요. 지금은 안 하지만 참석자 2 17:26 이 해녀분들이 오신 게 한 1970년대 80년대 이때쯤 되는 거 참석자 1 17:33 그 이후로도 온 사람 참석자 2 17:35 어 80년대 참석자 2 17:42 그러면 선생님 혹시 그 미역 같은 거 보면 개따기라고 하는 거 있지 않습니까? 그렇죠 개따기는 선생님 어리셨을 때 뭘로 했습니까? 참석자 1 17:53 갱이라고 있어요. 갱이 갱이 갱이 있는데 그거를 쭉 핀다고 갱이는 꼬부라졌잖아요. 예 기역자로 그 땅을 팔려면 기역자로 꼬부라져야 되는데 이 개념으로 쓴다 하면은 펴야 돼 똑바로 펴야 돼 그래 펴가이고 앞에 갈아가지고 이제 갯바위를 닦는 거야. 이제 뭐 이물질이 붙었는 거를 닦아주면은 이제 봄 되면은 거기에 미역이 포자가 붙어가지고 미역이 형성이 돼야 큰다는 얘기라 참석자 2 18:25 이것도 근데 예전에는 이런 개닦기 하려면은 집집마다 짬마다 나와서 하는 거 참석자 1 18:34 여기는 이제 개원이 총계별로 개원이 이제 주인이 형성돼 있어 그래 이제 어업에 종사를 얼마 해야 되고 이제 그래 돼 가지고 이제 그거가 규정이 있다고 총계 정관도 있고 규정에 따라 가지고 개헌이 되면은 개원이 이제 즉 말해서 이제 그 바다 메덱타 내 주인이야 거기서 대표자가 이제 종계장이 되고 그래 형성돼 가지고 거기서 이제 생산 나오면은 이제 여기는 화포암 채치라 이래가지고 화포암 채치라 그래가지고 이제 선바위 이 검정바위 담치바위 고래바위 이제 이름이 다 있어요. 복바위 고래바위 이래 가지고 짜미가 일곱 여덟 개 됐는데 지금은 옛날에는 그런 식으로 해가지고 거기에 이제 짬 뽑으러 오시오 이러면은 그 가면은 추첨을 해가지고 내가 이제 어디 점으로 간다 a점에 간다. b 짬에 간다. c 점에 간다. 이제 이제 쫙 이제 배당이 된다고요. 되면은 이제 봄철 되면은 이제 미역한다고 그러면 미역 채취해가지고 공동으로 나누고 참석자 2 19:57 그 이 바위들에 이게 미역만 나는 건 또 아니지 않습니까? 철마다 뭐 예를 들면 이 겨울철에는 미 돌김이 이렇게 날 때도 있고 참석자 1 20:08 근데 돌기 개념은 여기는 그 점에는 이제 나도 안 하고 인력이 저래가지고 또 파도도 이제 자주 있죠. 이 서해하고 달라요. 동해 바다가 그래가지고 옛날에는 그 방파제 세멘 TTP 찍어놨는데 그런 데 나면은 개인적으로 부지런한 사람이 가서 이제 뜯어가지고 말라가지고 이제 반찬 해 먹고 이런 사람도 있고 참석자 2 20:37 거기에도 그러면 그 방파제 거기 쪽에도 저기 뭐야 성게 말똥성게나 보라 성게 이런 것도 나니까 참석자 1 20:48 네 성게 전복 그런 거 나오면은 이제 공동으로 어촌계에서 채취해 가지고 어촌계 수익을 잡아가지고 이제 중계원들한테 배당금을 대답을 해줘요. 참석자 2 21:02 이게 근데 옛날에는 이 방파제 쪽에 있던 TTP가 TTP에서 나는 산물들을 동중에 줬다라고 하던데 참석자 1 21:13 그 개념은 옛날에는 이제 다 이제 정개원들이 이제 농가를 넘어갔는데 이제 거기서 이제 한 70년대 70~80년대 그때만 이제 방파제만 나는 거는 이제 이 동네 이제 이 조니가 형성돼 가지고 그 어르신들이 이제 그거를 이제 채취해 가지고 그걸 가지고 이제 뭐 막걸리도 한 잔 주고 어디 여행사 가 놀러 갈 때 그거를 그래가지고 준비해 가지고 그래 가고 그런 개념으로 그래 그래 하다가 지금은 또 이제 그거를 이제 방파제에 나는 미역의 화포함을 그 한 채만 이래 가지고 이제 얼마 누구 산다 이러면 그거 팔아가지고 그 돈이 이제 종이회로 들어가 가지고 거기서 이제 뭔가 막걸리도 한 잔 사서 쓰고 뭐 그런 개념으로 하다가 지금은 뭐 그 개념이 없어졌어요. 참석자 3 22:18 큰 금액은 아니었나 봐 참석자 1 22:19 예. 큰 금액이 아니에요. 아주 소홀하게 참석자 2 22:22 예전에 제가 모르겠습니다. 이게 이게 뭐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과감에서 나는 일곱 짜면서 나는 미역이 한 80년대나 80년대쯤 뭐 아니면 90년대라도 괜찮은데 한 얼마 정도 나는 겁니까? 만약에 총 생산량을 돈으로만 따지면 참석자 1 22:42 그때만 해도 미역이 참 많이 났어요. 가가 집에마다 미역 재 놓고 그걸 가지고 이제 뭔가 1년 다 먹고 살고 해변가 그 해변 미역이 제일 생산이 이제 이 어촌에서는 제일 일이 농사야 참석자 2 23:02 그만큼 중요한 참석자 1 23:05 그러기에 그걸 팔아가지고 자식들 공부도 시키고 내륙에 가면은 쌀 농사 지어가지고 팔아가지고 아들 공납금 주고 대학 시키고 이랬지만 요천에는 그런 다 해산물 가지고 그래야지 그도 천초 천초도 나 참석자 2 23:21 천초도 나오고 미역은 한 집에서 그러면 팔면 뭐 어차피 똑같이 나눠 가지는 거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러면 한 1인 한 가구당 한 얼마씩 떨어졌다고 참석자 1 23:34 그러기는 이제 다 이제 건조해 가지고 다 재 놓고 이제 한 번에 파는데 그때만 해도 몇 점이라고 그랬거든요. 한 100단위 한 점이라고 여보세요. 예. 참석자 1 23:57 주소가 울진군 기성면 구산 봉산로 구산 봉산로 1 1 8 예 예 참석자 1 24:20 근데 뭐 어떻게 알고 날 찾아왔어? 참석자 5 24:23 저는 같이 와서 저는 집안에 대해서는 조금 여쭤보고 싶어서 참석자 2 24:28 예 저희 안 참석자 5 24:31 한 시를 가지고 혹시 선생님 한 성 자 주자 어르신 아십니까? 한 송자 죽자 잘 모르고 한대공 참석자 1 24:43 한 대면 우리 집안에 어르신들 참석자 5 24:46 그러면은 한 대응 한대봉 이분들이 전부 다 집안 어르신이신 거네. 선생님 아버님은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데요? 참석자 1 24:57 한자 옥자 기자 참석자 5 24:59 한 억자 기자 그러면 혹시 한 억자 조자 되시는 분은 참석자 1 25:05 큰아버지 큰아버지 아버지 형님 네 참석자 2 25:09 저희가 저기 아까 전에 갔을 때 안 선생님 참석자 5 25:20 선생님 이장님께서 몇 분을 알려주셨어요? 제가 이제 여기에 예전에 저희들이 재작년에 와서 문서들을 보다 보니까 이 마을에서 조금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눈에 확 띄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분들 성취를 말씀드리고 혹시 그분들 후손들 중에서 아직 여기 계시는 분이 있으면 좀 만나볼 수 있을까 그리고 족보가 있으면은 이분들이 어떤 관계인지 그러니까 그 집안 안에서 그런 거 한번 여쭤보려고 했는데 여기는 보니까 가장 늦게까지 나오는 게 한 업자 조자 되시는 분이 성황당 중수기에 유사를 하셨다라고 참석자 1 25:57 맞아요. 그쵸 큰아버지가 그때 동네에 이제 일을 봤고 근데 지금에 와서는 내가 또 이제 일을 보고 참석자 5 26:06 선생님이 이어서 참석자 2 26:07 조니에 들어가 참석자 1 26:08 저기에 이제 종무를 이번에 올해 10월 대동추 마치고 이제 제가 맡았어요. 참석자 5 26:15 그러시구나. 아니 아버님은 그런 일은 안 하셨어. 참석자 1 26:19 아버지도 이제 동네 일을 마쳤지 다 했어요. 참석자 5 26:23 아버님은 그러면은 좀 더 뒤에 1950년대나 이럴 때 뭔가를 참석자 1 26:29 그런데 큰아버지 하시고 난 뒤에 이제 참석자 5 26:31 그래요. 저한테는 있는 기록이 일단 제가 1959년 정도까지만 정리를 하다 보니까 그러면 혹시 한 정자 호자 한정호 참석자 1 26:44 그거는 한 억조 아버지지 참석자 5 26:51 다 가족이시네요 그러면 한치홍 그건 모르겠습니다. 이분은 잘 모르고 한성주 되시는 분도 그렇구나. 그러면은 조금 전에 말씀드렸었던 한 정자 호자 되시는 분의 한 업자 조자 되시는 분의 부친 참석자 1 27:11 그때 시절만 해도 이제 할아버지께서 이제 이장 동네 이장 참석자 5 27:17 할아버님 성함은 어떻게 되시는데 참석자 1 27:19 아까 우한중호 참석자 5 27:23 한 그렇네 순간적으로 노했습니다. 참석자 1 27:29 큰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였겠네. 그렇지 큰아버지 아버지 참석자 5 27:33 그렇지 같은 아버지인데 생각 안 하는 사촌으로 생각해 이 한 정자 호자 쓰시는 어르신이 지금 여기에서 나와 있는 마을에서 가지고 있는 문서 중에 제일 좀 이른 시기의 것이 1907년에 마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셨던 분들 이름을 쭉 다 적어놨는데 여기에 보면은 이미 조이로 노반으로 다 올라가 계시거든요. 맞아요. 그래서 제가 이분 때문에 그리고 지금 잘 모르신다고 하셨는데 요즈음에 한 성 자 주자 하시는 분도 노반이나 이런 걸 했길래 저는 가족이 아닐까라고 생각을 했었거든요. 참석자 1 28:11 네 그 전 하면 저 기억력이 참석자 5 28:14 그리고 보면은 조부님께서 여기에 논도 가지고 있고 그쵸 논도 보니까 5필지 4필지 좀 있고 달효 저기 참석자 2 28:25 달류가 저기 어디야 참석자 1 28:28 월송달로 달로 달로라는 게 이제 여기서 월송 사이에 그거를 보고 달로라 되고 막 이랬어요. 참석자 5 28:37 여기에도 보니까 별도로 땅을 좀 가지고 계시더라고요. 참석자 1 28:42 우리 동네 참석자 5 28:43 네 정자 호자 되시는 조부님께서 지금 1902년부터 땅을 쭉 가지고 계세요. 1902년 1915 16년 다 땅을 가지고 있고 요 마을에서는 보니까 마을 안에 있는 땅 말고 인근 지역에 가지고 있는 땅을 가진 사람들 따로 정리를 좀 했더라고요. 여기에도 보면은 조부님이 참석자 1 29:05 근데 제가 알기로는 이제 우리 조니의 우리 동네 옛날에 이제 김 씨 집안이 이제 제일 처음에 우리 동네 부산 동네를 터를 잡았대요. 터를 잡아가지고 그 터가 어디냐 하면 저 학교 옆에 이제 뭐 가운데 가운데 집이라고 거기에 김 씨란 사람이 이제 그 틀을 잡았대요. 틀을 잡아가지고 이제 이 동네가 형성이 돼 가지고 김 씨 집안 사람이가 동네를 이제 처음 들어와 가지고 안씨 골매이 할매가 이제 우리 이제 이거 큰 우리 이 선왕당이라는 데 이제 큰 집에 가 있거든요. 거기에 가면은 이제 할아버지 제사를 모시는 기가 이제 김 씨 집안에 있지 처음에 돌아가시니까 그거고 이제 안 씨 골뱅이 할매하고 두 분이 이제 우리가 우리 동네에서 모시고 제사를 올리고 정월 초하루 초파 아니 뭐 중국 9월 중국 참석자 2 30:25 이제 참석자 1 30:26 이래가지고 이제 그 큰 집에 올라가 가지고 제사 지내고 참석자 2 30:30 거기를 큰 집이라고 그러면 참석자 1 30:31 예 큰 집이라야 되고 이제 거기 하는데 옛날에 우리 동네에 이제 독거 노인지 정말에서 자식도 없고 이런 분들이 일곱 분이 우리 동네에 살다가 하목에 살다가 하무이 죽은 거 아니고 이제 살다가 자식이 없으니까 우리 동네에다가 자기 있는 재산을 헌납하고 내 죽거든 제사만 좀 지내달라고 이래가지고 일곱 분이 그거는 이제 재산을 우리가 받아가지고 이제 그거를 농사 지어가지고 놔놨다가 9월 중근 날 일괄적으로 이제 묘도 이 산에 저 산에 있었어. 그래 가지고 이제 우리가 젊을 때 우리가 이제 동네 입문도 안 하고 이럴 때 어르신들이 이제 한 군데 다 날 받아가지고 동산에다가 한 군데 곱상을 쫙 해놨어요. 지금 가면은 묘가 이제 곱상 뭐가 이렇게 이래 있다고 그래 우리가 이제 9월 중근 날에 이제 인방들하고 제관을 세 사람 정해가지고 이제 거기에 제사를 이제 큰 집에 먼저 지내고 새벽에 이제 12시 되면 지내고 날이 새면은 이제 산소 가가지고 이제 제사 지내고 참석자 5 31:55 그분들은 왜 밑에 저기 마을 묘지에 공동묘지에는 안 모셨습니까? 참석자 1 32:01 근데 처음에는 죽었을 때 우리가 알기로는 온 산에다가 자기가 저 이혼을 했던가 뭐 이렇게 했겠죠 그래 가지고 이제 군데군데 막 떨어져 있었겠지. 그러다 보니까 이제 이거 별초하기도 힘들고 동네에서 어른들이 가 이제 회의해가지고 그것을 다 이제 파내 가지고 그래가지고 이제 우리 참석자 5 32:26 근데 마을 공동묘지도 이미 있는데 그쪽에 안 하고 그냥 산에 한 곳에 모은 거네 그냥 참석자 1 32:32 아니 사람 우리 동네 동 참석자 5 32:34 부산에다가 참석자 1 32:35 농산에다 7 상부를 이제 모시다. 참석자 5 32:37 우선은 마을 공동묘지가 있어서 이분들도 이장하는 김에 그쪽으로 이장을 하지 싶었는데 안 하신 것 같아 가지고 참석자 1 32:44 마을 공동 공동 사례 참석자 5 32:47 네 공동산도 있고 또 저 해안가 쪽에 캠핑장 옆에 참석자 1 32:51 거기는 옛날에는 이제 거기로 다 이제 부모님들이 돌아가시면 거기에다 다 이제 묘를 쓰고 했는데 참석자 5 33:01 네 참석자 1 33:02 동네에서 이제 조니엣으로 이제 이러면 안 된다. 이거 이제 이거를 뭔가 이제 개발 단계가 들어가니까 이제는 여기에는 묘를 쓰면 이제 벌칙을 받는다 이래가지고 이제 그때만 해도 이제 어른들 이제 얘기가 요즘 나와요. 옛날에 이제 윤복동 씨라고 이제 동네 일을 봤대요. 동네 일을 봤고 이제 자제분이 돌아가신 자제분이 동네 구장을 했고 참석자 5 33:41 윤복동 씨가 참석자 1 33:44 이제 동네 뭐 지금 맛이라 이제 총무를 봤지 그래 보는 개념이고 이제 이보감 씨라는 사람이 자제부인데 이제 이 동네 이장을 했고 참석자 5 34:00 네 대조리 하시는 참석자 1 34:01 이래가지고 이제 동네에서 너 이래 결의해놓고 왜 이렇게 하느냐 이래가지고 위장도 못하고 윤복동 씨도 동네 출입을 못하고 몇 년까지 못했대요. 못해가지고 이제 나중에 한 3년 지나가지고 이제 뭐 몇 사람들이 지금 흘러갔으니까 뭐 이렇게 합의 봐가지고 이제 그때 다시 또 이제 동네 입문하고 이랬대요. 우리가 이제 우리 듣기는 참석자 5 34:33 네 그러면은 대부분 분들은 공동묘지에 이 마을 분들은 예전에는 모셨네요. 다른 부모님들 그럼 선생님 부모님도 참석자 1 34:42 할아버지 할머니 계세요? 산소가 있어요. 참석자 2 34:46 그러면 아버 할아버지 아버님은 아직도 참석자 1 34:49 아버님은 아버님은 우리가 살아가지고는 그다음 못 가지 우리 이제 선 참석자 5 34:58 그럼 그전에도 선산이 있었는데 간 겁니까? 예 아버지 때부터는 참석자 1 35:04 아니 할아버지 할아버지 참석자 5 35:06 아버지 때는 선산이 없었습니까? 있었는데도 공동묘지에 모셨고 아버지 때는 선산에 모셨고 왜 공동 선산에 안 모시고 공동묘지에 모셨습니까? 참석자 1 35:15 그때는 우리가 모르죠. 참석자 5 35:16 그렇죠. 특별히 얘기 참석자 1 35:18 개념은 이제 참석자 5 35:19 아버지 얘기 안 하셨구나. 참석자 1 35:20 큰아버지도 이제 저 선산에 갔고 아버지도 선산에 갔는데 이제 아버지가 아버지의 아버지는 이제 어떻게 그거는 우리는 그건 모르지 그래 참석자 5 35:32 그런 얘기는 그렇지만 선산이 그전부터 있었던 거는 맞는 거네요. 선산이 어디에 있는 겁니까? 참석자 1 35:39 요 요 요 비행장 옆에 가면 있어 두 군데 있어 참석자 5 35:43 두 군데 있습니까? 요 근처에 많이 있습니까? 한 씨가 참석자 1 35:49 아니 많이 없어요. 참석자 5 35:50 예전에 혹시 한 씨들이 좀 어디 주변으로 좀 살았다고 할 만한 곳이 있을까요? 참석자 1 35:57 요 기성면 중에 정면이라고 참석자 5 36:01 정명리 예 예 예 예 참석자 1 36:03 그거 안에 안에 들어가면 집성촌이 있어요. 한시 집성촌이 있어요. 참석자 5 36:08 정명리가 한씨 집성촌으로 참석자 5 36:14 그러면 선산도 그쪽으로 있는 거네요. 참석자 1 36:18 거기도 있고 저 길곡이라고 메하리 울진 쪽에 더 들어가요. 그러다 가다 보면은 오봉산이라고 이제 우리가 어릴 때 재물을 어깨에 짊어지고 그 산에까지 올라가 왔는데 높아요. 선산이 높아요. 높아가지고 거기 이제 밑에 참석자 6 36:45 짱구야 코치가 앉아 엉겨서 참석자 1 36:48 온다고 전화 왔다. 이제 조금씩 온다. 그 밥에 기름 해야 되지 참석자 5 36:57 이시라고 친구분이십니까? 중이시니 이름 그러시구나 참석자 1 37:05 그래 가지고 이제 그 밑에다가 이제 매화 길곡리 밑에 눈이 있어요. 눈이 이제 아버지 앞으로 이제 그때만 해도 아버지가 이제 그 문중에 이제 회의 가고 이러면 아버지가 이제 뭐 글도 좀 아시고 이러니까 거의 막 논을 아버지 앞으로 또 해놨어요. 아버지가 앞으로 해놨는데 세금 나오면 다 우리 돈까지 주고 노는 이제 그 이제 제사 업무를 하는 사람을 줘가지고 어물만 해줘가 그거 하고 뭐 그러니까 그 사람은 아무런 그때는 이제 그래 가지고 그래가지고 얼마 전에 아버지 작고하시고 작고하시고 면회 들어가 다 정리해 아 참석자 5 44:55 어서 오세요. 참석자 5 45:04 강서상으로는 토지를 꾸준히 다 가지고 있었고 보통 가지고 있다가 1902년에 가지고 있다가 1915 16년 이 분이 쫙 조사를 할 때 들 참석자 6 45:14 손님 들이고 주 주문한 데 나와 봐라 이 다 왔다고 참석자 5 45:21 그래도 그래 정어리 공장을 하셨답니다. 할아버님 때 아무래도 그런 것 같고요. 여기에 지금 김순순 씨라고 하시는데 70대 되시는 분인데 그분의 집터가 정어리 공장이어서 왜냐하면 1939년에 37년 39년에 이 마을에서 정어리 배 17척으로부터 돈을 거두어 드리거든요. 그래서 여쭤보니까 이제 이 정어리 공장을 했다길래 여쭤보니까 여기에 정어리 공장이 있었고 이제 사촌분은 그걸 정리하고 후포로 내려가셨고 아버지는 그대로 할아버지는 여기를 정착하신 거 보니까 그쯤에 여기에 정착을 하셨던 것 같고요. 그때는 정어리를 어떻게 하는 건 아니고 왜냐하면 정어리 배 주인은 따로 있었을 거고 정어리 기름 빼는 일들을 했는데 그게 어디로 나가는지는 모르겠다고 제가 조사해 온 바에 따르면 조부님이 여기 땅이 조금 있다고 얘기했지 않습니까? 옆에도 땅이 있지만 이 마을에도 땅이 눈이 좀 많이 있거든요. 참석자 5 46:19 물어보니까 큰아버지 댁에 볏단 쫙 다 깔아놓고 했던 기억이 있다고 그래서 그거는 항상 흰쌀밥을 먹었다고 얘기를 하시네요. 근데 마을 공동묘지는 일제시대 때는 지금 할아버지 할머니가 마을 공동묘지에 모셨고 그죠 선산이 있는 데도 모셨고 그 뒤에는 이쪽으로 오게 된 것 같고 참석자 4 46:40 그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참석자 7 46:49 저거리를 뭘로 잡을까요? 참석자 2 46:52 정어리를 잡는 방법이 있는데 참석자 5 46:56 정어리 배 17척이나 여기서 들어와서 합니다. 참석자 5 47:11 여기도 보면 갑암은 계속 7개를 가지고 왔다 갔다 하고 저 구암은 7개에서 11개까지 쪼갰다가 다시 넣었다가 이런 식으로 하거든요. 근데 여기는 7개가 딱 정해져 있는 걸로 보면은 거의 변동 없이 운영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안정적으로 그것을 참석자 3 47:28 운영을 할 수 있는 참석자 2 47:29 그게 근데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통계 자료 보면 나오는 겁니까? 통증 자료 보면 7개가 나오는 겁니까? 참석자 5 47:36 이게 지금 현재 1930년대거든요. 그래서 여기에 보면은 7개 과간 7개 조 뭐 이런 식으로 해가지고 계속 얘기가 나와요. 근데 왜 제가 그걸 하냐면은 다 되도 이렇게 과감들이 자꾸 쪼개졌다가 말았다가 또 어디까지 어디까지 이게 좀 조정이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변동이 좀 있는데 그다음에 구암도 변동이 있거든요. 거일리 저는 거일리는 지금 분석을 본격적으로 하지는 않았는데 거기가 과감 수입이 꽤 그것도 크지 않습니까? 그런데 원래 있던 동이 쪼개지면서 구암하고 박곡동 나뉘어지거든요. 박곡이 조금 집안이나 신분적으로 좀 괜찮은 삶을 살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구하면 그건데 소유자는 박곡 쪽이고 참석자 2 48:28 과감의 소유자예요. 참석자 5 48:31 그러면서 밑에서 그 과감을 나누어서 수입하는 거는 이쪽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게 나누어지면서 과감에 대한 관리가 분동이 되면서 과감에 대한 게 뭐가 있지 않았나 싶어요. 그리고 그 소유권 참석자 2 48:46 원래 지금 현지 조사에 따르면은 과감을 소유하는 쪽은 포항 남쪽 밑으로는 남해안까지는 아니지만 소유주가 소유주 과감 참석자 5 48:58 그 위에는 없잖아요. 참석자 2 49:00 짬주가 있고 그다음에 그 위에는 이제 없는 걸로 참석자 5 49:04 그렇지. 근데 그 과감해서 그러니까 내가 아예 소유했다기보다는 그것에 대한 권한을 가질 수 있는 거 있지 않습니까? 일정 기간 동안 그게 분동이 되면서 오히려 위에 실무적으로 괜찮은 사람들이 그것에 대한 전체 소유권을 가지고 밑에 이제 다 나누어 주는 거는 그 밑에 거 부안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약간 했는데 그건 모르겠어요. 더 봐야 되는데 일단 그렇고 거기는 과감히 계속 몇 개에서부터 몇 개 참석자 2 49:34 얼마 얼마 얼마 들어옵니까? 여기서 참석자 3 49:37 잠시 볼게요. 참석자 2 49:38 근데 제가 봤을 때 그게 제일 큽니다. 지금 제가 지금 71년도 자료 봤을 때 제일 지금 헷갈리는 게 제가 계속 물어보고 있는 게 과감에서 나오는 수입이 사실상 동 중에 제일 큰 수입이거든요. 그거 없으면은 다 빚 쪄야 됩니다. 말 그대로 계속 착용을 해 오기 때문에 난 저는 맨 처음에 착용이 나오길래 참석자 5 50:03 지금 근데 참석자 2 50:05 수입으로 차용이 잡히더라고 참석자 5 50:06 그렇게 큰 보이니까 그렇게 큰 금액은 지금 아니어서 지금 보시면은 그렇죠 이런 식으로 40원 금액 이렇게 이 사용했던 거 이 참석자 7 50:26 야 이거 얼마 안 되는데 도저히 참석자 5 50:29 그렇죠 시기별로 참석자 2 50:31 이게 몇 년도 거예요? 참석자 5 50:32 이게 지금 현재 1941년인데 이건 41년에 네 늦어서 그렇고요. 참석자 2 50:38 돈이 저것밖에 안 되면 진짜 좋은 건데 참석자 5 50:40 근데 노반 쪽에서도 가질 수 있거든요. 제가 이게 문서를 하나도 안 만들어 가지고 이래 정신이 없게 만들었습니다. 참석자 2 50:49 근데 이번에 1월 달이나 1월 말이나 이때쯤 얘기하면 좀 뭔가 그러니까 차라리 뭔가 저는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이게 학술 논문이지만 뭔가 그래도 포인트가 있으면 좋겠다. 차라리 포인트를 잡고 가는 게 맞아요. 이게 제가 마진이 할 때도 약간 느꼈는데 포인트 없이 가면 다 각자 관심대로 가가지고 맞아요. 너무 막 그렇죠 마진이 제가 유명한 그쪽에서 역사학부터 시작해서 다 붙었는데 너무 중구난방입니다. 물론 다채롭게 본다 아주 좋은 거죠. 참석자 2 51:36 근데 예전에 낙성대 아마 그 맞질 농민들이 그런 거는 맞질 농민들이 가능했던 이유는 저는 그거라고 그러니까 이게 이게 시간을 많이 투자해서라기보다는 뭐 한 개 붙잡고 니 이거 니 이거 아마 그러니까 에디터를 가장한 이용훈 선생님보다 위에 분 안병재 선생님 계셨죠 그분이 니 이거 니 이거 니 이거 자기 머릿속에 있는 걸 내가 다 모아 하니까 너 이거 해 너 이거 해 너 이거 해 너 이거 해 너는 전공이 이거니까 뭐 이거 해 약간 이렇게 해서 근데 그게 근데 좀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각자 이렇게 가면 포인트 맞추기가 쉽지는 않아 참석자 5 52:20 그래서 이게 확 고서 문화의 기획으로 들어 참석자 2 52:25 그러니까 그렇게 돼도 의미는 있습니다. 의미는 있을 것 같습니다. 한 가지의 자료로 해서 이렇게 했는데 맞질 농민까지는 좀 힘들죠. 거기는 거기는 못 갑니다. 거기는 제가 봤을 때 다 같이 오랫동안 호흡 맞췄던 사람들이 한 자료 가지고 개척했고 결국에는 참석자 5 52:47 관심도가 다 비슷하고 참석자 2 52:49 저기 한 명이 우리는 이걸 없애야 돼 이거 이 이론에 이제 이 이론이나 이런 점 그러니까 사실은 느낌 봤을 때는 이제 결국에는 이제 저기 식민지 수탈론 참석자 4 53:06 네 참석자 2 53:07 이 못했던 일들 그거는 뭐 그 담론을 엎어버리겠다는 것보다는 식민지 수탈론이나 아니면 그전에 있던 여러 가지 논제들을 우리 차근차근 각자 맡아서 부셔보자 하고 이제 위에서 너 이거 너 이거 내 거 했을 것 같아 그 이론적 토대 내에서 했기 때문에 자료를 분석해도 그 파워가 있었던 건데 그럼 우리는 뭐를 뭐를 해야 될까 이런 생각이 계속 드네. 뭐 예를 들면 과감이면 과감 아니면 뭐 참석자 5 53:41 이는 자료가 너무 참석자 2 53:42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과감이면 과감 아니면 노반개면 노방개 아니면 동중으로 하자 동중 이렇게 돼야 되는 거야. 근데 지금 선생님 하시는 거랑 저는 이용우 선생님 하시는 거랑 정확하게 뭐가 차이점이 있는지 잘 모르겠거든요. 참석자 5 53:56 그래서 나는 헷갈릴 것 같은 거예요. 그분은 이제 재정 쪽으로 하는 거고 저는 아까 얘기한 대로 일단은 그거 스토어부터 들어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시기를 좀 맡아달라했기 때문에 참석자 2 54:07 그 그러면 어떻게 여가에 참석자 5 54:12 그렇게 될 가능성 그러니까 국가 정책의 변화가 이 마을에서의 단절을 가져오지 않았을까 이게 뚝 끊어지는 거예요. 이 사람들이요. 그러고 나서 사람들이 어떤 조직을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또는 노안이 나왔든지 뭐든지 그러면서 이 사람들이 근데 구체적인 뭐를 하기 시작했는가는 재정도 그 부분은 조금 비거든요. 이용훈 선생님하고 또 피해야 되니까 이용훈 선생님은 재정 전체를 해보다가 하겠다는 거니 참석자 2 54:42 지금 중요한 거는 이걸 해서 명확하게 뭐를 밝히겠다라는 큰 아젠다가 있어야 돼. 아젠다가 있어야 그 안에서 이제 아니면은 아예 아젠다가 특정 아젠다를 못 뽑아내면 아예 야 우리 마을 문서라는 걸로 이렇게 다양한 걸 알아낼 수 있어라는 걸 우리가 한번 보여줄게라고 이렇게 차라리 강조를 하고 가면 나을 수도 있고 우리가 마을 문서라는 거 가지고 어떤 사람은 대부분 회계 문서 분석도 잘 없지 않습니까? 사실은 연구들 자체가 회계 분석을 해 줄게 회계 문서 가지고 우리는 이런 거 이런 걸 많이 할 수 있어라고 하면 저는 이제 뭔가 그게 맞춰지면 나도 어디에 맞춰 볼까라는 생각이 드는 건데 근데 지금 이게 구성이 나쁘다고는 생각은 안 합니다. 아마 송기태 교수님 의뢰 같은 거 하시고 의뢰도 중요하죠. 사실 사실 의뢰로 나가는 게 참석자 5 55:57 근데 의뢰하고 문서가 어떻게 매칭이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문서를 이용을 전혀 안 하시는 건 참석자 2 56:05 아니요 하실 거 그거 하려면 근데 이제 그거를 어떻게 해야 될까 뭐를 밝힐지가 중요한 거지 사실 그거는 뭐 근데 참석자 5 56:14 그냥 이거는 진짜 말 그대로 미시사처럼 되겠죠. 한 지역사회에서의 근데 지역사회의 변화들이 그래도 큰 어떤 흐름하고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가 계속 얘기가 돼야지 미시사가 의미가 살 수 있을 텐데 참석자 2 56:28 그러려면은 이제 큰 아젠다가 아젠다를 맛지레 농민들도 읽어보면서 느꼈던 거는 그게 힘을 가진 사실은 개별 논문으로만 떼놓고 보면은 아니 개별 논문으로도 괜찮은데 그게 학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책이 돼버린 거는 큰 아젠다 속에서 하나하나씩 각개 격파를 이제 제 느낌은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개별 논문으로도 엄청난 책이죠. 사실은 그 당시에 특히 지금처럼 이런 이런 것도 없는 시절에 아마 수기로 엄청나게 4년 동안 걸린 이유가 있으시겠죠. 원영이도 한 달씩 깔고 이 제작도 이런 거 안다고 제작부 찾고 그러니까 자료 발굴부터 시작해서 그 장비에 그 시기에 그런 연구하는 건 엄청난 연구인 거는 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에 각각의 어떤 특정 아젠다가 없었다면 개별 논문이었다면 한 지역 사례로 끝나는 거지 않습니까? 근데 그게 한 지역 사례를 넘어서 사실은 이제 충격을 줬던 게 있는 거죠. 참석자 2 57:37 그게 거기에 대해서 한 지역사회를 넘어서 그걸 어떻게 적용하는지는 제 생각대로라면 조금 무리가 있는 면도 있겠지만 어쨌든 학계에 충격 줬던 이유는 아젠다인데 우리 연구는 아젠다를 지금 설정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을 것 같고 참석자 5 57:56 계속 모여서 이 문서들을 보면서 하려고 하면은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한 참석자 2 58:02 이제 참석자 5 58:03 진짜 급하게 보답답다. 원래가 작년 10월까지 8초만 일단 끝내기로 했잖아요. 그러면은 끝내고 모든 사람이 그 문서를 다 지금 다 보지도 못한 상태잖아 그렇죠. 그러니까 참석자 2 58:18 그렇게 하려고 했으면 이제 그래서 이제 그렇게 했으면 사업이 선택이 안 됐겠죠. 그런가 왜냐하면 그 정도 분량을 해가지고는 만약에 그거 해서 예를 들면 뭐 여기 구산리를 개발해서 우리 이거 해서 할게 하면 공동 연구는 돼도 이게 선택은 안 됐어요. 이렇게 돌리니까 참석자 5 58:40 그래서 전문 연구소를 우리 프로젝트가 끝난 그다음까지 딱 시간이 있잖아요. 그 시간까지 내는 줄 알았죠. 일단 그거고 두 번째 구산리가 선택된 것 자체가 이 구산리가 저는 그때 막 급하게 발표한다고 준비하면서 보니까 이게 빠지는 게 너무 많은 거예요. 그리고 회계에 너무 많이 집중되어 있고 회계 앞 시기는 아예 없고 그다음에 회계도 하면서 들어오는 수입에 대한 게 좀 구체적이어야 되는데 너무 없고 이 항목들이 이제 참석자 2 59:12 제가 다 대리 못 봤는데 다리 다 대리는 이것보다 훨씬 더 상세하게 나오는 참석자 5 59:17 하데이는 과감 그러니까 저기 미역에 많이 포커스가 맞춰지면서 그러면서 종류가 다양한 문서들 있죠. 거기는 미역 참석자 2 59:27 신상리나 이런 데도 사실은 참석자 5 59:29 그다음에 그 두 개가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참석자 2 59:32 신상리 같은 경우에는 거기는 신상리는 회계 문서가 있고 참석자 5 59:38 그렇죠 참석자 2 59:38 하나 있고 그다음에 다른 문서들이 쳐주는 게 참석자 5 59:42 그러니까 그게 있어야 되지 참석자 2 59:43 회의록 아니면 회의록들 그다음에 여러 가지 그러니까 찾아보려고 하면 찾을 수 있는 뭔가의 그 단서들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 꽤 있습니다. 마을 내부에 어떤 투쟁 근데 거기는 이제 그 앞에 이제 결국에는 조선시대까지 끌고 가려는 그게 없으니까 그런 거 따지면은 저희가 구한 문 참석자 5 1:00:15 되면은 진짜로 참석자 2 1:00:16 구함만 됐으면 이제 좀 참석자 5 1:00:18 좀 확 다양하게 하고 이게 종류별로 문서들은 너무 많고 아까 얘기했던 대로 제가 요 인근 일대를 쫙 놓고 항구의 크기들을 비교해 놓고 거기에 대한 세금 이런 거 등급을 매겨놓은 그 문서가 다 있거든요. 참석자 5 1:00:32 그러면 이렇게 저렇게 맞춰서 얘기할 수 있는데 이거는 이 문서가 다른 문서가 없으니까 얘기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그래서 제가 연대 얘기를 했었는데 그래서 저는 이 연대가 공동체 전체의 성격에서 이러한 19세기의 변동들을 더 확산 폭발시키는 건지 아니면 확 이렇게 죽이는 데 기여했는지 가장 크게 그렇죠 의병 운동이 확산되게 했을까 아니면 공동체라는 성격 자체가 어쨌든 이렇게 뭉쳐져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거라면 이 공동체 성격이 저 안에 내부를 떠나서 그 성격 자체가 그래서 외부의 사건들을 만났을 때 그거를 폭발시키면서 확산시킬까 아니면은 이거를 잦아들게 만들까라고 하는 그 문제를 얘기하려고 해도 마을들 사이를 메꿔줄 수 있는 또 다른 문서가 있었는데 이건 진짜 돈이 주고받은 거 외에는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이디어만 내지 그거를 메꿔 갈 수 있는 게 없는 거야. 참석자 5 1:01:27 구암을 전부 다 1900년대 초반까지 거의 그렇게 되니까 앞에 문서로 돼 있고 이거는 또 전부 다 그 이유 문서인데 너무 이유 문서가 많고 그래서 마을 간의 연대 얘기를 하지만 문서가 구하면 많이 있거든요. 그 관련된 문서가 그래서 제가 이 문서를 그때 발표할 때 독자적인 항목으로 빼야 되겠다고 생각했던 게 다대나 다른 마을에서는 그런 게 없었다는 게 그런 행위가 그런 문서가 그렇게 많이 남지 않는데 여기는 문서 종류가 많지 않은데 그런 문서가 꼭 나오게 된 거예요. 그래서 여기 부산도 그 맨 앞에 문서가 그거잖아요. 1898년에 연조금 낸 거잖아. 그리고 내가 얼마를 받았고 얼마를 돌려줬다. 몇 월 며칠에 돌려줬다 다 나와요. 그렇게 본다면은 구암은 훨씬 많아요. 그런 게 그래서 제가 보면서 이 지역들은 이게 하나의 특징이 될 수 있나 했고 그러고 보니까 이 문서들이 전부 다 19세기 문서인데 19세기는 알다시피 한국 사회에서 너무너무 많은 그렇죠. 참석자 5 1:02:34 그런 변동들이 일어났던 시기고 특히나 요 라인이 동학이든 뭐든의 영향력에 휩쓸고 갔던 시기인데 그랬으면 과연 참석자 8 1:02:43 문화가 다 했는 겨 오늘 하필 이렇게 복잡한데 왔다. 오늘 우리 여기 이 회장님이고 이 저 면회 면접 때 나왔잖아 뭐가 있어 그런데 저 같으면 어차 복잡거린 데지 그 내가 이제 와가 얘기하 참석자 2 1:03:01 아 저희가 다음에 다음에 참석자 8 1:03:04 주세요. 지금 안 된다. 지금 우리 저 문 같은 게 이제 이거 어떻게 해달라고 군에서도 어제 면에서도 어째 이렇게 해 오늘 그런 아서 예 예예 좀 복잡해 가지고 수술이 혹시 수 참석자 5 1:03:22 만두 선생님의 연락도 좀 알 수 있을까 참석자 8 1:03:25 연락처 이거 나 거지로 가면 되는데 지금 보도 했지 참석자 5 1:03:28 갔는데 아무도 안 계셔가지고 참석자 8 1:03:30 아버지가 화장실 갔지 못 나오잖아 다리가 다리가 없어 그러고 가면 그 집에 가면 이제 그 아줌마가 여기 탔거든. 근데 이제 화장실 갔다 화장실 밖에 안 보 밖에 저도 가 참석자 5 1:03:48 그래서 제가 저 안에 문까지 열어봤는데 화장실을 못 열어보니까 문까지 열어봤는데 안 계셔서 다 참석자 8 1:03:53 그래 가지 좋지 그렇네요. 나가지는 나가지는 뭐 엄하게 좀 나갈 때가 어딨나 화장실 가는 게 또 이 그래서 아까 화장실 가서 그래가 화장실 가서 그다음에 와가지고 또 조용하게 야 미리 연락 그래드리고 아 지금 자꾸 이렇게 이제 불참해 가지고 저희 때문에 참석자 2 1:04:12 죄송합니다. 아 참석자 3 1:04:14 인사드리고 참석자 3 1:04:22 오늘 다음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예 예 예 참석자 8 1:04:35 그래서 오늘 좀 우리가 좀 인사 좀 참석자 3 1:04:38 예 예 감사합니다. 참석자 3 1:04:47 기하시면 그냥 내려가셔야 되겠네. 예 오늘 엄청 바쁘신 날이라면서요. 그 2일까지 참석자 6 1:04:58 뻗어 올려가지고 한 번 더 참석자 3 1:04:59 예 예 예 예 연락처 연락 참석자 2 1:05:04 자 하나 받아도 되겠습니까? 10 잠시만요 참석자 3 1:05:08 변화를 010 참석자 1 1:05:10 6 5 5 4 참석자 3 1:05:12 6 5 5 4 5 5 0 6 5 5 0 6 예 참석자 5 1:05:17 네 감사합니다. 저는 전화번호를 남겨서 겠습니다. 다음에 와서 한 번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참석자 2 1:05:26 선생님 감사합니다. 예 참석자 3 1:05:33 한태성 저희 잠깐 가면서 그러면 한 분 여기가 차가 차를 저기 저기 가져가기 김태경 선생님이라고 참석자 4 1:05:57 거기가 가게가 손 선생님이 그런데. clovanot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