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22_대풍헌 관리인 김성조(1950년 생) 2024.08.22 목 오후 1:55 ・ 79분 12초 이민재 참석자 1 00:00 네 참석자 2 00:01 자기들이 아는 데까지만 해도 나름대로 다 이렇게 경기에서 웃는 얘기를 만들어 그게 한 번 성류구에 해설은 들어갔는데 그것도 기자들한테 해설을 참석자 1 00:19 아이고 참석자 2 00:21 얘기를 만들어 가다가 되게 들통 나가지고 한번 내 손 참석자 1 00:27 아 참석자 2 00:28 그래 저는 해설을 가지고 사회는 했는데 이 관리하면서 이 마을 역사에 대한 얘기는 제가 참석자 1 00:39 아 예 참석자 2 00:40 특별히 다른 건 다 전시관이라고 다 돼 있잖아. 참석자 1 00:43 그러니까 마을 역사에 대해서 그거에 대해서 여쭤보려고 마을 구산리 마을에 대해서 여쭤보려고 참석자 2 00:52 저는 이 마을에서 태어났고 지금까지 살고 있고 참석자 1 00:56 성함이 그럼 혹시 어떻게 참석자 2 00:58 김일성 정부가 김일성 조 참석자 1 01:00 김성자 조자 혹시 몇 년생이신가요? 몇 년생이신 거 저는 참석자 2 01:08 호적상은 53년생이고 본나이는 범띠입니다. 참석자 1 01:13 75세 6.25 4 때 태어나가지고 피난 갔다 와가지고 아이고 참석자 2 01:18 그게 출생 신고를 좀 늦게 해가지고 그래서 나이가 3살 늦게 돼. 참석자 1 01:24 선생님 그럼 몇 대조 위부터 혹시 이 동네 좀 사셨던 겁니까? 참석자 2 01:34 제가 이제 어릴 때부터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살고 있지. 참석자 1 01:39 선생님 위에 몇 대 아버지 때 들어오셨는지 아니면 뭐 할아버지 때문에 들어오셨는지 참석자 2 01:47 우리 제가 알기로는 여기 할아버지가 살았고 할아버지가 살았는데 그 이상은 잘 알고 있는데 어릴 때 할아버지는 어릴 때 돌아가셔가지고 아버지하고만 같이 살 그래서 이제 2대 3대가 사라졌어. 참석자 1 02:06 3대가 선생님 그러면 어디 혹시 김씨 이신 건지 본관이 어떻게 되시는지 김 김 참석자 2 02:18 우리 김수로가 69세소입니다. 김수로가 69세소인데 참석자 1 02:24 여기 선생님들 저리 앉아 앉으십시오. 저는 의자 갖다 줄게요. 참석자 3 02:38 선생님 안녕하시오. 참석자 2 02:41 예 특별히 보고 조사하듯이 그렇게 하지 말고 참석자 1 03:00 호구 조사 이런 게 아니라 저희가 이게 보면 어떤 분께서 이렇게 어떤 말씀을 해주셨나 저희가 이제 그 어떻게 보면 좀 맥락을 좀 알아야 좀 좋은 질문도 나오고 이래서 호구 조사 이런 거 절대 안 참석자 2 03:20 되게 이제 이제 방송을 해서도 몇 번 나왔어 취재도 많이 취재도 했고 했기 때문에 특별히 그런 것까지도 다 할 필요 없고 이 대분에 관한 궁금한 사항이 있거든요. 한번 물어보시면 제가 참석자 1 03:41 저희는 대풍원은 대풍원인데 구산리 전체에 저희가 조사를 하고 있어가지고 구산리 마을 참석자 2 03:51 마을 전체를 그렇게 역사에 대한 얘기를 알고 싶으면은 아까 이거 참석자 1 03:58 자수 어른 가셨고 근데 이게 또 세대별로 또 조금씩 다르지 않습니까? 또 기억하고 계시는 게 달라지고 선생님 그러면 혹시 이 어리셨을 때 이쪽 대풍원이나 이런 데들은 그때 건물이 어떻게 남아 참석자 2 04:19 저희들이 어렸을 때는 저기 지금 현재 건물이 아닌 참석자 1 04:25 아니 참석자 2 04:26 백골집이죠. 단층 건물이 아닌 백골집 우리 마을 우리 마을 동사로 사용하던 건물 지금은 마을 회관인데 그때 당시에는 동사라고 그랬어요. 동사 동사라고 그러는데 조그마한 집 그냥 막 다 기울어져 가는 집 우리 어릴 때 이제 놀이터로 사용했던 참석자 1 04:44 집인데 참석자 2 04:45 지금 이게 이제 문화재청에서 문화재 사 문화재 가치가 있다 해가지고 2010년도에 이거 복원해 놓은 겁니다. 2010년 복원해서 지금 저런 모양으로 된 거지 그때 당시에는 조그마한 집이 참석자 1 04:59 같은 거였습니까? 참석자 2 05:00 초가집은 아닌데 기아 집은 기인데 단층이 안 돼 있는 100골 참석자 3 05:05 그래도 안에 다 현판 같은 게 걸려 있어서 참석자 2 05:08 있었죠. 형판은 어차피 조선시대 때부터 우리 마을 동사로 사용했던 건물이니까 그때 당시에 마을 어른들이 뭐 서양당 중수 대통 중수했던 거 이런 거 지금 말하면 이제 창조받은 거 있잖아요. 그런 자료 같은 거 그런 걸 현판에다가 이렇게 기록해서 그려놓은 겁니다. 문서도 문서도 있는데 문서도 있어요. 있는데 그 문서보다는 이렇게 또 수도사들이 머물면서 그 행적에 대한 또 기록을 그렇게 지금 현판이 지금 18개잖아요. 앞에 2개 떼놓고 나머지 16개 형판이 바로 그겁니다. 옛날 우리 마을 어른들이 이렇게 운영해 왔던 기록을 그렇게 만들어 놓고 참석자 1 05:59 선생님 근데 그러면 어리셨을 때 학교는 어 참석자 2 06:03 어디 화학전에 부산 초등학교 참석자 1 06:05 부산 초등학교 참석자 2 06:06 부산 초등학교 역사학 참석자 1 06:09 한 몇 년 정도 참석자 3 06:12 그건 1920~30년대가 만들어지지 않았습니까? 참석자 2 06:15 오래 됐는데 지금은 폐교가 됐어요. 학생들이 없어서 시작했다가 붕교됐다가 기성초등학교 분교 됐다가 지금은 폐교 참석자 1 06:26 선생님 때는 그러면 아직 구산 초등 국학교 참석자 2 06:31 저는 부산초등학교 13회 13회인데 그때 당시에는 두 반인데 한 반 60명씩 해가지고 한 120명 한학년이 120명씩 110명씩 그렇게 그래도 그래도 마을 엄청 큰 마을이거든요. 이게 전국에서 황지리담으로 전국에서 제일 큰 마을인데 참석자 3 06:54 이게 동으로 몇 개 나누어져 있습니까? 아니면 그대로 리로 하나로만 있으니까 참석자 2 06:59 구산리로 리로 마을을 운영해 왔는데 행정본구상은 구산 1 2로 지금 나눠져 있어요. 근데 마을 운영은 9 3 하나 하나로 마을 운영 부산 하나로 운영하고 있고 그러니까 이제 마을 행정 부분은 1 2루로 갈라져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너무 이제 광범위하니까 또 행정에서도 그거 있잖아요. 마을 운영하는 데 좀 복잡하고 하니까 1 2로 갈라놓고 2장을 두 사람 만들어놓고 그랬으면 잘 1 2 그러니까 처음에는 저쪽이 말 일리가 돼 있어어요. 저쪽에 저쪽이 말 일리가 돼 있고 여기 말 일리가 돼 있는데 본 이 마을 형성 과정이 동사를 기준으로 해가지고 마을이 형성됐기 때문에 12가 여기도 되고 1위는 저쪽으로 됩니다. 지금은 부산 122고 고산 12 행정공은 그렇게 돼 있고 마을 전체 운영은 그랬더니 노반계에서 운영하는 거 마을 하나로 운영하고 있다. 참석자 1 08:04 아니 선생님 그런데 이 구산리 같은 경우에는 그 안에 무슨 꼴 무슨 꼴 이런 거는 없습니까? 참석자 2 08:15 그거는 엄청 많죠. 참석자 1 08:16 그 동네 그런 골이 있습니까? 뭐 참석자 2 08:20 근데 우리 마을은 특별히 그냥 구산 옛날에는 구미라 했기도 했고 구미라고 했기도 하기도 했고 그다음에 이제 부산으로 이렇게 통상 이렇게 마을 이름을 그렇게 불렀는데 저기 내륙에 들어가면 항고 같은 경우에는 큰 골 섭식골 참석자 1 08:44 골이 많잖아요. 여기 참석자 2 08:45 골은 있긴 있어요. 여기도 여기도 마을 중심부에 그랑골이라는 골이 있고 거랑골 그랑골이라는 골은 있습니다. 있는데 그거는 말을 이제 형성 과정에서 그 골을 만들어 놓은 거 그랑골이라고 그렇게 합니다. 근데 지금은 그랑골이라고 특별히 부르지도 않아요. 그냥 그냥 공항 진입로 이렇게 부르지 옛날처럼 그랑골 소사골 여기도 소사골이라고 그러거든요. 소사 소사골이라고 옛날 우물이 있는데 옛날 어른들이 여기서 제사 지내고 할 때 여기에 이제 금줄 치고 가서 이제 목욕 체계하고 그물 받아가지고 음식 만들고 해가지고 고사도 좀 참석자 1 09:23 고사 고 참석자 2 09:25 고 소 여기 소사골 그다음에 그 밑에 내려가면 그랑골 고리 하나 둘 찬물맥이라고 있어요. 찬물내기 찬물이 이제 계속 찬물 샘이 넣는다. 해가지고 찬물맥이라는 고리 그 동네에 있고 그다음에 저쪽에 가면은 근데 지금 옛날에는 구글구글 하고 그랬었는데 지금은 그걸 안 쓰니까 그리고 해망채라고 쭉쭉 올라가면 해망채가 우리 마을은 이제 옛날 어른들이 그렇게 불렀던 이름들이 해왕 있고 그래요. 지금 제가 얘기했던 소사골 랑굴 그다음에 찬물 들이 이런 식으로 참석자 1 10:08 선생님 여기가 선생님 어리셨을 때만 해도 한 몇 호 정도 되는 동네였던 참석자 2 10:14 제가 아까 얘기했던 대 참석자 1 10:15 큰 동네 참석자 2 10:17 전국에서 리 단위로 한 개 리당으로 제일 크다 했을 때 그때는 한 450호 이상 됐어요. 450호 이상 됐는데 그리고 인구도 한 40~500명 됐고 했는데 지금은 엄청 줄었죠. 지금 빈집들이 보통 요 12에 제가 이장할 때 심심해가지고 한번 이렇게 해서 쭉 이렇게 확인해 보니까 빈 집 사람이 살지 않는 집들이 한 100호가 넘더라고 지금은 10 그 반은 이제 집이 비었다고 이렇게 보면 돼요. 이 부분에 빈집 있잖아요. 여기 여기 한 50m 안쪽에 빈집이 한 집 두 집 세 집 네 집 5세 그건 10집이 돼. 참석자 1 11:02 여기서 참석자 2 11:03 전봇대 하나 두 개 사이에 한 100m 사이에 그만큼 지금 집이 많이 비어 있습니다. 있고 그 집들 자식들이 가끔씩 이름으로 와가지고 집을 이렇게 사용하긴 해도 그냥 사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참석자 1 11:18 450번 하는데 참석자 2 11:20 돌아가시면 저 젊은 사람들이 왜 나갔다 들어오겠어요? 안 들어오잖아요 그러면 다 지금 앞으로가 몰라요. 10년 후면은 여기 동네가 없어진다고 그렇게 강한 해도 참석자 1 11:33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과언이 아닐 선생님. 그러면 이 450호 정도 되면 이 선생님 어리셨을 때 이 동네 내에 전방이라든가 술집이라던가 뭐 이런 시설들이 좀 많았습니까? 참석자 2 11:49 그때는 지은빵이 많았어. 그렇죠 지음빵 이제 이제 지금 그 여기는 특별히 카페나 다방 같은 거는 없어 참석자 1 12:03 45 참석자 2 12:04 하나 있다가 하나 있다가 없어지기는 없어졌는데 그때 당시에 막걸리집 같은 거는 애용을 많이 해도 솔직히 커피 먹고 이렇게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거든요. 그래서 다방 하나 생겼다가 없어졌고 식당도 식당으로 그때 당시에는 식당이 별로 없었는데 근래 들어가지고는 횟집들이 한 세 집 정도 생겼는데 지금은 횟집들이 다 없어지고 지금 저쪽에 바다 횟집 하나 하고 이쪽에도 하나 하긴 해요. 일미횟집이라고 하나 참석자 1 12:37 선생님 그러니까 국민학생이실 때는 450호 정도 되면 제 생각에는 웬만한 면 크기니까 참석자 2 12:47 그렇지 이 민석이보다 여기가 더 참석자 1 12:50 그러니까 이발소라든가 아니 참석자 2 12:54 이발소는 2개가 있었는데 참석자 1 12:56 선생님 어리셨을 때 참석자 2 12:58 제가 어렸을 때 두 개가 있었는데 그것도 어느 때가 된 지금 지금은 하나도 없잖아요. 여기 소 같은 건 하나도 없고 미용실은 아예 없고 참석자 1 13:08 그때 이발소가 한 2개 참석자 2 13:12 두 개 있었는데 그것도 없어진 지 오래됐어요. 오래됐고 거기서 이제 기술 배웠던 사람들은 저기 후포나 웨지 나와가지고 하는 사람이 있긴 하지. 참석자 1 13:22 막걸리집은 여기 혹시 참석자 2 13:24 막걸리는 참석자 1 13:25 어리셨을 때 기준으로 참석자 2 13:27 그런데 전방에서 꼭 막걸리 판 게 아니고 그때는 농지를 많이 담가 먹어 집에서 그냥 이렇게 모르게 하다가 또 그 순서대로 가지고 참석자 1 13:35 여기 밀주 단속 같은 거 안 나왔습니까? 왜 안 나왔을까요? 그 참석자 2 13:40 단속 많이 나왔지 나오고 양조장이 늦게 하나 생기긴 생겼는데 양조장이 생기고부터 물주 단속이 많이 나오더라고요. 양조장에서 자꾸 고발해가지고 왜 그러냐 하면 이제 자기들이 양조장에서 술을 만들어 팔아야 되는데 자꾸 밀주해가지고 양주 술은 안 팔아주니까 그 사람들이 자꾸 고발해가지고 단속을 하고 있는 건데 그전까지는 다 집에서 만들어 먹었어요. 양조장도 없었어. 그때는 양조장도 없었고 없었고 저기 월송 가는 쪽에 그쪽에 양조장이 하나 있긴 있었는데 그러면 거기서 배달해 주잖아요. 배달해주면 청빵 같은 데서 받아 팔고 했는데 그 술도 비싸잖아요. 참석자 1 14:18 그렇죠 참석자 2 14:19 다 어려운 시절에 앉아가지고 막걸리 파는 거 받아 힘들어하니까 집에서 조금 조금씩 하다가 이제 당장 여기 생기고 또 자꾸 고발에 들어가고 막 단속이 나오고 참석자 1 14:35 아니 그러면 이 450호나 되는 큰 마을인데 주민분들은 주로 어떤 일 많이 하셨던 겁니까? 저희 어촌이니까 호흡 관련된 일도 하셨을 것 같긴 하 참석자 2 14:54 그러니까 어업도 하고 또 농사도 하고 반 반 이렇게 그렇게 그래서 다 어려운 시절에 어렵게 살았어요. 그래서 조금씩 이제 농사 지어가고 이제 하고 바다에서 나는 고기 같은 것도 고기도 그때는 여기 팔로가 잘 안 돼가지고 거기 촌에 이고 가가지고 막 사랑을 받고 참석자 1 15:19 여기서 그런 걸 혹시 도구라고 하 참석자 2 15:22 도브는 도브는 다니는 사람이 있었는데 영양 쪽으로 참석자 1 15:26 영양으로 참석자 2 15:27 그렇지 영양 저기 영양이나 수비 그쪽으로 백암산 넘어가지고 그쪽에 여기 고기 입고 가지고 쌀 맞고 온 사람 받고 온 사람도 있었고 또 나름대로 이쪽에서 또 바다에서 나는 고기 같은 것도 입고 가가지고 거기 가지고 또 일해주고 아니면 고추 같은 것도 맛고 이렇게 도업하는 사람들도 제가 알기로는 몇 분이 있었어요 몇 분 있었는데 전체가 한 게 아니고 그래서 기 영양 수비 쪽으로 영양 도브도 잘 안 해요. 도브는 어떻게 안 참석자 1 16:04 어저께 저기 학회 가니까 울진 도구 가지고 얘기가 나오길래 참석자 2 16:11 울진에 가면은 보부상도 참석자 1 16:13 여기서는 선질꾼이나 보부상 이런 분들은 참석자 2 16:18 여기는 그렇게 울진처럼 부부상들이 지고 가가지고 팔고 이런 건 없었고 도 그냥 이제 가가지고 일해주고 뭐든지 안 그러면 여기 고기 같은 거 가지고 와가지고 막아오든지 이런 쪽으로 옛날부터 그런 식으로 했지 보부상 울진의 보부상처럼 장사꾼들이 이렇게 해가지고 하는 건 별로 없었어요. 그리고 여기서 나는 고기는 여기서 소비가 안 되니까 주로 영덕 쪽으로 참석자 1 16:43 영덕으로 참석자 2 16:44 영덕 문어 같은 거 대개 그래서 대개가 영덕대게를 하잖아요. 그리고 원조는 영덕 대게가 아닙니다. 그게 왜 울진 우리 어른들 우리 아버지도 세대도 여기서 이제 대개를 잡아가지고 일본에 수출하고 독립 회사라고 했어요. 그때 당시에 독립 회사 일본 수출하고 나머지 이제 상품 가치가 안 되는 거는 이거 지고 어디 가냐 하면 영덕가에요. 영덕 문어도 마찬가지 참석자 1 17:09 그러면 시장을 그럼 저기 영예읍쪽까지 참석자 2 17:13 영덕 쪽에서 영덕 쪽에서 영덕 그러니까 영덕에 가면은 안동 저쪽으로 이제 내륙에서 상인들이 많이 나오잖아요. 그래서 그쪽에 팔류 형성이 상당히 형성이 잘 됐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서 오는 대게나 문어 같은 거는 영덕 가면 다 별로였어. 근데 그래서 영덕대개라고 합니다. 영덕 영덕은 영덕은 내륙이지 해안가가 아닙니데 여기는 해안가 울진 쪽은 해안가가 있지만 그쪽에는 영덕은 바닷가는 물론 있지만 주로 내륙이라서 안동이나 이쪽에 영양 이쪽에서 상인들이 진부 이쪽에서 상인들이 와가지고 여기서 가져가는 물건 받아가지고 안동 안동문어 안동 안동문어가 여기서 잡은 거지 안동에서 안동 고등어도 여기서 잡아온 고등어 지고 넘어가다가 저기 백암산 영양수기로 넘어갈 때 고기가 물나 그러면 소금 갖다 뿌려가지고 울진도 소금 염증 있잖아요. 뿌려가지고 그냥 이 안동 가가지고 씻어가지고 그게 안동 간고등어라 하 안동에서 고기는 구경을 잡겠어요. 그래서 참석자 1 18:26 선생님 혹시 여기 구상포 폭우도 상당히 큰 폭우였습니까? 참석자 2 18:33 우리 어릴 때는 항만 시설이 하나도 안 돼 있었어요. 그냥 그대로 글자 그대로 포구 아무런 시설이 안 돼 있는 상태에서 이제 바닷가 쪽 폭우인데 그러면 그때 당시에는 이제 배들이 바다에서 들어오잖아요. 바다에 바로 돌아요. 파도 치우면 바다 돌아가지고 다 이렇게 육당에다가 이제 참석자 1 18:57 배를 배를 대고 거치하고 올리고 그때 배면 어떤 배입니까? 참석자 1 19:05 그러니까 도배라는 게 무동력선인 거죠. 참석자 2 19:08 동시 그럼 지금 저기 수투선 있죠 저런 모형이 있는데 이 수투선하고는 수토선은 파노스선을 모형 따 만든 거고 우리 옛날에 거기 작업선들은 배가 이렇게 안 생겼어요. 어떻게 이렇게 생겼다고 이렇게 생겼는데 배가 엄청 컸어요. 참석자 1 19:28 이런 느낌으로 생긴 겁니다. 이렇게 이렇게 참석자 2 19:33 이렇게 지금은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생겼지만 옛날에는 이렇게 이렇게 해서 돛 달고 노 젓고 그래서 배 올리는 것도 배를 6단에 거치하는 것도 이렇게 어떤 기계로 가지고 하는 게 아니고 밑에 나무 깔고 깔고 이렇게 둔대지를 한다는 얘기 들어봐. 참석자 1 19:50 아니 처음 들어봤습니다. 참석자 2 19:52 군대질을 한다는 거 그러면 사람들이 옆에서 한 6명이 나무를 깔고 이렇게 이렇게 하면 배가 조금씩 조금씩 올라와 그렇게 6단에다가 올리고 참석자 1 20:01 그런 그런 어떤 둔대질 같은 거는 혹시 마을분들이 이렇게 나가서 하고 돈 받고 이런 참석자 2 20:09 돈 받는 거 아니고 그래 같이 사업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그렇죠 어차피 배에 종사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 하면 그래도 그 가족들 같이 그렇게 해가지고 참석자 1 20:19 여기에 그러면 흔히 말해서 그런 배를 그런 어떤 무동력선 배를 가지고 계셨던 분들이 꽤 되셨던 겁니까? 참석자 2 20:32 그때는 선주들이 많았죠. 내가 가지고 있는 선주들이 많았지 참석자 1 20:39 한 명 혹시라도 대 참석자 2 20:43 개인적으로 자기가 독선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고 여럿이 이제 협업으로 여럿이 협업으로 그렇죠 협업으로 했죠. 몇 명씩 모아서 참석자 1 20:55 이게 자기가 내가 여기가 아니라 다 각자 돈 내서 이제 참석자 2 21:00 혼자서 하기 힘드니까 그러니까 같이 이 어부었다는 얘기도 안 해 참석자 1 21:06 저 고향이 포항이라가지고 참석자 2 21:08 그래 어부었어요. 그래 같이 어부어가지고 해가지고 같이 모아가지고 그래서 이제 배 하나 하면 여러 시설 이제 선 같은 선주가 되는 거지 몇 명이 똑같은 선주가 돼가지고 이제 그러면 그 가족들하고 이래가지고 그걸 운영하고 그때 당시에는 개인 독주가 별로 없었고 독주라고 그 이후에는 자기 나름대로 자기가 이런이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만들어가고 이제 선인 고용을 해가지고 이렇게 하고 참석자 1 21:39 그럼 이 동네에도 목수분들이 꽤 되셨겠네. 참석자 2 21:42 목수분들은 그렇게 많지는 않아 참석자 1 21:44 배 만들 정도의 참석자 2 21:47 이 마을의 목수들은 제가 알기로는 마을의 목수는 한두 명밖에 없었고 외지에서 들어오는 목수들이 참석자 1 21:56 외지에 참석자 2 21:57 저 어릴 때 그리고 그 이에 제가 어느 정도 성장했을 때는 배들이 조선소가 생겨가지고 조선소에서 배 만들고 했지 참석자 1 22:07 그때는 이미 선생님 오셨어. 참석자 2 22:09 우리 어렸을 때처럼 목수들이 와가지고 여기서 나무 해가지고 깎아가지고 뭐 이렇게 배 만들고 하 그런 목수들은 없었는 것 같아요. 제 기억에는 없는 것 같고 아주 어릴 때는 목수들이 다른 데서 와서 여기 지방에 있는 목수들이 한두 명 있었는가 봐 다른 데서 목수들이 와서 이제 배를 건조해 주고 그렇게 그렇게 했는 것 같아요. 참석자 1 22:31 혹시 그 목수분들이 집도 이렇게 지어주시고 하시는 겁니까? 참석자 2 22:35 배목수는 집을 안 집 짓는 목수들은 또 따로 있어요. 따로 배 목소는 따로 있고 분야가 틀렸다 참석자 1 22:46 선생님 그러면 이렇게 폭우나 이렇게 배에 올리고 내리고 하면 주로 그 큰 배들 돗담배들이지만 큰 배들이잖아 그 배들은 뭐 잡으러 다녔던 배들인 겁니까? 참석자 2 23:01 그 대구 대구도 잡고 대게도 잡고 문어도 잡고 뭐 이렇게 제가 알기로는 그런 배들이 옛날에 우동 선들이 그물을 이제 주로 많이 참석자 1 23:14 그물 참석자 2 23:15 방어 같은 것도 제가 방어도 잡고 혹시 문어는 문어는 보니까 옛날에 낚시가 제일 잡더라고 연승으로 으로 제가 어릴 때 보니까 낚시 잡고 대개는 그물 건물도 지금은 대개 건물이 엄청 많잖아. 참석자 1 23:32 근데 참석자 2 23:34 옛날에는 그물이 한 필이라고 그럽니다. 한 필 한 필 한 필 내지 두 필 그러니까 선장은 두 필 가져갈 수 있고 선원들은 한 필만 정도 가져가는데 한 필이 한 100m 나오겠나 그래도 개를 엄청 많이 잡아오더라고. 그 당시에는 요즘은 한 필이 아니고 100필씩 그렇게 그물을 투망해도 옛날이지 그런 기회를 못 잡아요. 우리 아버지도 옛날 기회를 잡았다는 한 필 딱 저녁에 가지고 가잖아요. 한 필 저녁 가지고 가가지고 바다에 투망해놨던 그물 당기고 한 피를 놓고 와요. 놓고 오는데 한 필 잡은 고기가 대개개가 옛날에 지게로 요즘 요즘은 내약과나 이런 거 없었고 지게로 지금 오는데 지개 바수으로 알아야 바수으로 참석자 1 24:24 이런 식으로 하든가 참석자 2 24:27 한 몇 십 개씩 치고 와가지고 집에 가지고 와가지고 이제 좋은 상품 되는 거는 독림 회사에다가 독림회사 후포 동림 회사에 후회 참석자 1 24:34 독립해서 참석자 2 24:35 무역했거든요. 동생 회사가 그 회사에다가 보내고 참석자 1 24:41 안 나와가지고 말씀마다 적어야 되는데 참석자 2 24:45 나머지는 여기서 재요 최 박사가 참석자 1 24:56 여기서 쪄서 참석자 2 25:00 방금 같은 것도 이렇게 팔로우가 없어가지고 잡아오면 조업만 하 거기 이제 상인들이 와가지고 가져가고 나쁜 놈들은 전부 다 간질하잖아요. 간질 단지에다가 소금 치요. 그래서 이제 절여놓는다니까 고기를 절여놨다가 이제 그걸 또 명절 때나 아니면 이때 이제 꺼내가지고 이제 시장에 팔고 팔고 아니면 이거 처음으로 참석자 1 25:32 도부도 가시고 참석자 2 25:34 쌀밥 그렇게 그때 시기 되면 다 그렇게 고기를 잡아와도 제대로 팔 참석자 1 25:41 그리고 구산리 같은 경우에는 그 장 다니시면 어디 쪽으로 참석자 2 25:47 장이 그때 당시에는 특별히 장이 없어서 오일장이라는 게 없었어요. 참석자 1 25:51 그 당시에요. 참석자 2 25:52 제가 어릴 때는 오지 하고 지금은 오일장이 평해 기승 구포 영해 영덕 해가지고 오일장이잖아요. 그렇죠 지금 울진장은 참석자 1 26:02 평의 기성 우포 참석자 2 26:06 0의 영덕 영의 용 그러네. 1은 기성 2위는 평에 3은 후포 4은 영덕 5는 형에 참석자 1 26:15 이런 유통 위는 후포 참석자 2 26:18 아니죠 이런 기승 2평에 평 2평에 3 후포 4 영도 또 11일은 귀성 이런 식으로 참석자 1 26:29 1 3 1 1 이렇게 참석자 2 26:31 그래 장미 그랬습니다. 오 참석자 1 26:33 근데 이런 장이 선생님 어리셨을 때만 해도 이렇게 막 참석자 2 26:37 그때 당시에는 이 장이 날짜로 이렇게 정해놓고 1 2 어디냐 이런 없었고 장이 그렇게 형성이 안 됐어요. 그때 당시에는 형성이 안 돼가지고 그냥 뭘 고기를 잡아오든지 이렇게 하면은 물물 교환 많이 했어. 물물교환 저차원으로 다니면서 고기 가지고 와가지고 쌀밥 주로 영덕장 울진장 사람이 다녔는데 그래서 여기서 고기 잡아가지고 영덕에 가면 만나요. 영덕대게 영덕대게가 아니거든요. 울진 대게 여기서 잡은 고기가 울진 대게 아니고 여기 원산지가 여기 가면은 기성 앞에 가면은 불패짬이라고 있어요. 불패짬 불 불패짬 지금은 왕돌초까지 나가야 그래도 대게를 몇 마리씩 잡을 수 있는데 그때 당시에는 그물 한 필 가지고 벌패잠에 나가면 목선으로 무동유선 타고 나가면 대게를 엄청 많이 잡았어. 참석자 3 27:36 구암하고 거일 이쪽도 전부 대개가 많이 잡혔던 참석자 2 27:40 그 일 쪽에 그 일은 홀치기라고 있어. 홀치기 받아 가가지고 이렇게 이게 저인망처럼 그 일은 주로 그런 어구가 많이 형성됐고 이 동네는 자마 그물로 여기 불패잠이라 있어요. 대구도 잡고 뭐 하고 그리고 연승 낚시로 문어 잡고 옛날에는 그래 지역마다 지역의 특색이 있으니까 여기는 그물로 대개 잡고 방어 잡고 참석자 3 28:15 혹시 그거 대게 같은 거 잡아서 잡는 거는 남성분들이 해도 혹시 여성들이 그거를 좀 팔거나 이런 것도 있었습니까? 나눠주거 참석자 2 28:24 그렇지 가져와가지고요. 좋은 거는 아까 얘기했듯이 그게 후포 동림회사를 통해가지고 일본 수출 다 합니다. 엄청 좋은 거는 참석자 3 28:33 그때 여성분들은 여자분들은 뭐 어떤 역할 참석자 2 28:36 집에 부인들은 그걸 치잖아요. 그렇죠 나무 치어가지고 그걸 참석자 3 28:43 대에 직접 가서 뭐 하지는 않네요. 참석자 2 28:45 여기는 판매가 안 되잖아요. 참석자 3 28:46 그러니까 아니 배에서 내려서 골라서 이렇게 한다는데 이거에 여자들은 좀 안 하십니까? 참석자 2 28:51 그때 당시에는 그것도 없었어. 그냥 막 해가지고 바소구리에 지게 바소구리 지고 집에 오면은 거기서 골라가지고 좋은 놈은 독립 회사를 통해가지고 하고 팔고 나쁜 거는 집에서 쪄요. 전부 다 방어 같은 거 고기 같은 거는 전부 간지 하잖아요. 단지에다가 참석자 1 29:10 그러고 나서 참석자 2 29:12 가지고 지레 놨다가 참석자 1 29:14 선생님 혹시 여기서 자연 만드는 것도 보셨습니까? 이거 물대가지고 이 토판 만들어가지고 거기 이 물 넣어서 그 소금 만드는 거 참석자 2 29:26 여기는 그게 없었고 여기는 정어리 기름 짜는 공장도 있었다. 참석자 1 29:32 정어리 기름 참석자 2 29:33 정어리를 기름 짰다 이러더라고 잘 모르겠는데 저도 잘 못 봤는데 어른들이 하는 얘기가 여기 정어리 공장이 있었다. 참석자 1 29:45 기름장 공간에서 참석자 2 29:46 그리고 소음 하는 거는 울진 염전에서 했고 참석자 1 29:49 울진 영장 참석자 2 29:50 울진 염병 울진에 가면 저기 거기 망양경 있잖아요. 망양경 망양경 있는 울진 망양 울진 망양 참석자 3 30:01 더 이쪽으로 참석자 2 30:02 울진 망양정 그쵸 그 왕피천 있는데 그쪽에 가면은 염전이 그때 그래 부부상들이 염전 소금을 가지고 안동 저쪽에 모항 그쪽으로 참석자 1 30:15 없어요. 없죠 참석자 3 30:17 그 산 쪽에 그런 거는 없습니까? 염 참석자 2 30:21 그래서 여기 보면 저게 있는데 참석자 3 30:31 선생님 여기가 강원도이다가 갑자기 경상도 돼서 좀 그렇잖아요. 참석자 2 30:36 어릴 때 강원도에서 경 63 모 참석자 3 30:44 확실해요. 참석자 3 30:49 이쪽으로 바뀐 게 있습니까? 참석자 2 30:51 여기 보면은 공지문화 이 책도 있는데 이걸 보면 다 나와 있는데 시간이 그렇게 안 되잖아요. 그렇죠 그리고 이런 책도 보면 참석자 1 31:04 선생님 그러면 여기 원래 저 위쪽쯤에 상엿집도 있었다고 하던데 뭐 상엿집 상요 보관해 놓는 장소 갔을 때 선생님 상이요 예예예 상이요 예예 상이 참석자 2 31:25 상지 지금 이쪽에 있잖아요. 참석자 1 31:29 골 참석자 2 31:30 출입로를 타고 들어가면 거기 제일교회라고 있어요. 제일 우리 앞쪽에 가면 있는데 거기 지금 관리를 안 해가지고 폐가 참석자 1 31:41 다시피. 참석자 2 31:42 근데 그게 저는 알아요. 바로 우리 밭 있는 참석자 1 31:46 밑에 있기 때문에 참석자 2 31:47 아는데 지금 그걸 사용도 안 하죠. 어차피 그걸 그냥 방치해 두니까 나무 풀 이렇게 해가지고 보기도 힘들어요. 어떤 참석자 1 31:59 안에 그럼 상혁아 아직 참석자 2 32:04 옛날에는 나무 상해잖아요. 그게 어느 시절부터 나무상에는 썩어 없어지니까 철상이로 만들어 놨어요. 철로 만들 지금도 가서 볼 수는 있는데 그게 막 우거져가지고 보기가 힘들 것 같아요. 전에도 한번 어떤 그쪽에 관심 있는 분이 와가지고 한번 보자고 하더라고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보자고 해가지고 제가 모시고 갔는데 상인 마을에 어떤 자원 같은 걸 그렇게 이제 보여달라고 부탁하기 때문에 제가 이 성안당 쪽 항리 우리 옛날 우리 어른들이 쓰던 거 있잖아요. 그래서 그걸 보여주기 위해가지고 모시러 갔는데 못 봐요. 들어 참석자 1 32:54 선생님 그러면 그 상여 같은 것도 직접 많이 매셨겠네요 참석자 2 33:02 저희들은 아니죠. 참석자 1 33:03 메시지나 참석자 2 33:04 우리가 아주 어릴 때 그거 상해 나가고 들어가고 하는 건 봤는데 우리 커가지고는 그걸 안 해. 참석자 1 33:11 예전에 그러면 상여 어른들이 이제 맬 때 저기 한 몇 분 정도 몇 분 정도 이렇게 내시는 거 근데 나무 사형 참석자 2 33:26 그때는 나무 상인인데 양쪽으로 한 12분 정도가 상의를 매는 것 같아. 그리고 앞에서 이렇게 막 조기치면서 참석자 1 33:37 상욕소리하는 사람 참석자 2 33:39 소리하는 사람 앞에 형이 옆에 하고 또 그 조그마한 거 있잖아요. 그걸 물어 그걸 이제 메고 다니는 사람 두 사람도 있고 깃발 들고 다니는 사람도 있어. 그러니까 사람이 한 분 돌아가시면 그 밑에 딸린 이제 가족들하고 당군들이 하는 당군 당군 매고 이렇게 하는 사람들은 당국이라 하는데 다 합치면 한 40~50명 되는 것 같아요. 참석자 1 34:04 이 상여 매고 앞에 이거 들고 하는 사람들 당군이라고 하는 거 참석자 2 34:08 예 그 상해를 운구하는 사람들 운구라고 그러잖아요. 운구하는 그분들은 이제 당군 당군으로 근데 그때 당시에는 전체가 그러니까 마을에서 사람 돌아가시면 사람 있잖아요. 장례 치르는데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이게 나와가지고 그렇게 하고 그랬는데 굉장히 했지 뭐 그때는 참석자 1 34:37 그러면 혹시 어리셔서 모르실 수도 있는데 혹시 이렇게 당군 을 하는 사람들은 뭐 그냥 말 그대로 동네 사람들이니까 아니면 친족들이 해주는지 아니면 딴 데서 경기도 이런 데는 상영 운구하는 사람이 사서 오더라고 참석자 2 34:55 사람이 사가지고 온 거는 저는 잘 못 봤고 그게 그 개가 있더라고 개가 참석자 3 35:05 여기서는 폐 이렇게 안 불렀습니까? 무슨 무 참석자 2 35:08 그래 패라 그래 패라는 그런 개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패군 패꾼하잖아요. 그죠 패꾼이라 하는데 그분들이 와서 이제 다 해요. 묘까지 다 쓰고 상기 메고 나와가지고 묘까지 다 쓰고 그리고 그 전날 이제 폐 대접한다고 했잖아요. 그렇죠 참석자 3 35:25 7개 칠패가 있었던데요. 폐가 그러면 7 단지가 상혁이가 있었나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그냥 옛날 기록에 일제시대 우대 기록에는 참석자 1 35:38 패꾼한테 이렇게 대접해 주는 것도 있습니다. 참석자 2 35:43 패대접하잖아요. 대 참석자 1 35:45 패대장 전날 참석자 2 35:47 그 전날에 편의점 할 때 그 막 상주들 불러가지고 막 먹여가지고 치고 이래가지고 돈 뜯고 막 이러는 거 있대요. 그걸 구경만 했지 실질적으로 참석자 1 35:58 상주 불러서 이렇게 참석자 2 36:01 그래가지고 거기 있어요. 그때 당시에는 어려웠으니까 막 떡 해가지고 떡 넣고 담배 봉다리 담배 있잖아요. 그런 담배가 아니고 봉지 담배 담배 넣고 뭐 이래 해가지고 대접을 해주더라고요. 참석자 3 36:15 저기 옆에 황골이라든지 표선 이런 데는 상여를 잘 안 했습니까? 여기 와서 빌렸었었습니까? 참석자 2 36:21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빌려가지고 가든지 참석자 3 36:25 여기서 종종 빌려가길래 두 곳에서 특히 표섬에서 상여를 조금 빌려가 참석자 2 36:31 그런 것까지는 모르고 그때 당시에 어릴 때니까 그 저기 이제 패대접한다고 이제 당원들 모아놓고 장난치고 이러잖아요. 그죠 이제 국상했다 그래요. 나이가 한 7 80 먹고 돌아가신 분들은 다 국사이라 그래가지고 잔치하다시피 그렇게 했어요. 참석자 1 36:51 7 80 참석자 2 36:53 상주들 불러가지고 가 장난치고 해가지고 돈 뜯어가지고 그 패꾼들을 몰아가지고 하기도 해. 그런 건 우리가 구글은 했지 실질적으로 개입은 안 해봤죠. 참석자 1 37:06 선생님 그럼 이동 구산리 같은 데 큰 큰 명절이 혹시 단노가 컸다고 하는 얘기 혹시 다노 때 컸습니까? 이게 이 동네 어 참석자 2 37:23 단어는 그렇게 단어는 저기 지금도 그게 단오 행사를 하잖아요. 월송 큰 줄 당기기를 알아요 월송에 가면 큰 줄 당기기가 아직까지 신송 집으로 내려온 게 있는데 평양에 단오제를 했고 이 동네는 단어 명절을 그렇게 크게 안 치고 이제 대보름 명절 대보름 명절을 크게 했고 그리고 여기는 고사를 노방계에서 이 동사 고사를 1년에 한 5개 치는 겁니다. 그러니까 1월 정추 고사 1월 3월 5월 단호고사 중국어 고사 해가지고 고사를 엄청 많이 치러요. 근데 지금은 다 줄어 다 줄어서 지금은 중국어 사로 참석자 1 38:10 월성 큰 줄다리 참석자 2 38:13 남자 여자 싫어 참석자 1 38:13 신랑 신부가 이렇게 참석자 2 38:15 오리손 큰줄 당기기 여기 나왔을 건데 그거 말고 아까 체증 울진문화 여기 들어오면 여기 들어오면 우리 손 큰줄 당기기 참석자 1 38:25 그러면 노반개 다노 때 집에서 특별히 뭘 먹는다든가 그런 거는 별로 마을에서 씨름을 대회를 크게 한다든가 참석자 2 38:39 이 동네는 그렇게 그렇게 안 하고 이 동네는 단어 행사를 그렇게 크게 안 했고 평해 단오제 해가지고 평해 쪽에서 단어를 단어 행사를 많이 했는데 얘기 그래서 울 큰줄 당기기 하고 그래 했는데 여기는 대보름 때 대보름 행사는 나름대로 이렇게 동에서 행사 징장구 치고 뭐 이렇게 해서 말을 12분 갈라가지고 경기도 하고 이런 거는 했는데 단원 행사는 별로 안 했고 참석자 1 39:11 그러면 그때 그러면 저기 성왕당에서 제사를 대보름 때 지내고 이렇게 내려오고 이런 행사는 거 참석자 2 39:23 거기 저기 정초 고사라고 그래가지고 정초 고사하고 또 정월 대보름 고사 이런 고사는 여기 성황당에 가가지고 성안당에 가면 문제 제사를 지냅니다. 음식 만들어 가지고 성황당 제사 지내고 또 여기 대풍은 대풍은 여기도 동사니까 여기서도 이제 제사 지내고 참석자 1 39:51 그러면 이 성 정초고사나 정월 대보름 고사 같은 경우에는 돈이 노반계가 아니라 돈이 중심이 돼서 하는 겁니까? 참석자 2 40:03 동의 중심인데 동의 중심인데 노반계가 이제 행사를 주최하는 거지 노 노반계가 그래서 옛날부터 이 노방개가 어떻게 형성됐는가 저기 저기 동계 와문이 있어요. 동계와문 보면 1904년도 강우 8년 때 마을의 행인이 들어가고 동네 사람들이 뿔뿔이 막 여기가 타고 흩어지고 할 때 이 동네 80가구 중에 20명이 뜻이 있는 20명이 노반계라는 개를 모읍니다. 도망개는 개를 모아서 자기 사비를 내가지고 동네를 운영해 왔어요. 운영해 왔는데 이게 이제 나라에서 보니까 자체적으로 잘 운영이 되잖아요. 그래서 참석자 3 40:54 반계라고는 안 적었던데 노반계라고 불렀네요. 그때 그냥 동계로만 돼 있지 그분들이 참석자 2 41:00 아니 그때는 그때는 누가 인터뷰를 했는지 잘 모르겠는데 참석자 3 41:04 자료에는 그렇길래 노반계라고는 안 나와 있어. 그냥 동계 원문으로만 참석자 2 41:09 여기 동계 문 참석자 3 41:10 그렇죠 동대문 참석자 2 41:11 통계 문 통계 문인데 그게 참석자 3 41:13 이분을 동계 참석자 2 41:14 그게 이제 나라에서 동계 왕문이라는 이제 발급해 준 겁니다. 해준 건데 그래서 그때 당시에 이제 노방제라는 사조직이 구성돼 가지고 이제 뜻이 있는 분들이 사비를 내가지고 나를 운영해왔다. 그게 노방제 그래서 나라에서는 동 개 이제 이 동네에 개가 개 참석자 3 41:40 여기 마을분들은 노방이다. 참석자 2 41:42 그래서 그걸 지금은 노반계가 그 나라에서는 동계라고 해가지고 이제 와문이 늘어. 참석자 1 41:48 그럼 노반계가 들어가려면 특별한 뭔가 과제 참석자 2 41:56 마을 노후 방지 자체에 어떤 가입하는 그게 있어요. 규칙이 있어 있는데 이제 마을에서 이제 유사랑 유사로부터 마을 일을 이제 마을 일을 처리하다가 일을 보는 사람들 있잖아요. 유사부터 유사 다음에 동수 인방 존이 이런 식으로 이 나름대로 계급을 만들어 놨더라고요. 참석자 3 42:25 좌체동수라는 말도 썼습니까? 여기 좌체 참석자 2 42:30 어떤 통수요? 참석자 3 42:32 좌체동수 참석자 2 42:33 자체 동수라는 얘기는 처음 들어 못 들어봤습니다. 자체 동수라 물어보고 여기에 보통 유사로부터 시작해가지고 그다음 유사가 1년이 끝나게 되면 일 보고 끝나면 이제 동옥수가 돼요. 동옥수는 이제 마을에 이제 어떤 그 관리를 하는 사람인데 이제 동수 그다음에 그 위에 또 2인방 조이 이런 식으로 해가지고 그래서 나름대로 계급을 그렇게 만들었어요. 만들었는데 저는 아직까지 그 노망기에 가입 안 했어요. 가입 안 했는데 조건이 안 되네. 이게 어떻게 되냐 하면은 거기 마을 책임자를 아무것도 안 한 사람들은 유사로부터 시작해가지고 해야 되고 마을 이장이나 청계장이나 마을 책임을 했던 사람들은 유사를 건너 뛰고 동수 동수 동수 부터 시키는데 그것도 동수도 그냥 막 시키는 게 아니고 신청해요. 내가 마을 일을 하겠습니다 하고 신청하면 그러면 어른들이 앉아가지고 노방계에서 이제 심사를 해요. 참석자 2 43:39 심사해가지고 이제 저 사람 동수시키라 하고 임명하는데 누가 임명하냐 하면은 그 자체적으로 만든 계급이 있어 대준이라고 대자는 대자는 아무 데나 막 쓰는 건 아닙니다. 여기 보면 현판에 보면 전조니 시조니 이런 그런 건 있어도 아직까지 대존이라는 건 없어요. 그 대자는 대통령이나 아니면 대장군이나 이랬을 때 대자가 쓰는 거예요. 그래서 노방개가 저는 항상 불만이 있는 게 노반계가 사주기적인데 자체에서 마음대로 계급을 만들었다는 겁니다. 만드는데 거기서 대자를 넣어서 대종이라고 대전에는 아무 데나 쓰는 거 아니거든 여기 보면 현판에 보면 대전에 같은 게 없어요. 전부 시조이 현조니 뭐 이렇게 하지 그래서 이제 마을 운영하고 그렇게 했는데 그래서 옛날에는 있잖아요. 동네 수리하는 어른들이 없으면 후손들이 유사도 못 탔다. 그때 당시에 그랬어요. 근데 지금은 또 세월이 많이 변해가고 이장들 어촌계장들 능력이 있으면 아무나 할 수 있잖아요. 끝발이 없어도 솔직한 말로 막말로 해가지고 참석자 1 44:52 예전에는 이렇게 위에 또 가족 중에 누가 누가 이렇게 있어야 하 참석자 2 44:57 출입하는 어른이 없으면 유사도 못 했다. 참석자 1 44:59 노방에 이렇게 출입하는 어른이 없으면 참석자 2 45:02 그때 당시에는 그랬어. 근데 지금은 안 그래 지금은 아무나 이장할 수 있고 아무나 청계장 할 수 있고 해가지고 만 책임자로 하게 되면 동수도 하고 유산은 신청만 하면 유사 시켜줘요. 그럼 유사 마치면 바로 동수가 되거든요. 동수도 되는데 그것도 어른들이 임명을 해요. 자격이 있다 없다를 그래서 참석자 3 45:23 관계에서 동장님들이나 이런 데 월급 준 적도 있습니까? 없어 참석자 2 45:29 없고 이장들은 옛날에 동네에서 목욕이라고 그래가지고 그 목욕 자체에서 얼마씩 걷어서 이 양들 그냥 활동비 같은 거 주고 이랬는데 참석자 3 45:43 마을 사람들이 다 했지 도방에서 따로 참석자 2 45:45 아니 지금은 그거마저도 왜 그러냐 하면은 행정에서 행정에서 그게 또 이장들이나 이런 다 해주잖아요. 이장들 지금 한 달에 50만 원 이상 받아요. 활동비를 그리고 또 농협에서도 심부름 시킨다고 또 10만 원 주고 이래가지고 이장들이 한 달에 받는 어쨌든 수입이 한 60만 원 이상 되잖아요. 그러니까 이장들 서로 하려고 그래 참석자 1 46:14 그러면 지금 그러니까 노반계가 예전 같은 경우에는 그 권위가 어쨌든 상당히 높았던 권위 참석자 2 46:28 그렇죠 마을 운영을 노안계에서 했으니까 동원법이 제일 무서운 거 아니에요 법 중에서 동법이 제일 무섭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주민들이 말하지 자식들이 부모한테 잘 못 하잖아요. 잡아다 놓고 멍말이 무슨 말이 참석자 1 46:42 진짜요? 그거 보신 적 있어? 참석자 2 46:44 그때 무법 천지잖아요. 그때는 그래서 동법이 제일 무섭다는 겁니다. 참석자 3 46:47 보셨어요? 그렇게 하는 거 보셨습니까? 참석자 2 46:50 저들은 저는 참석자 1 46:52 못 봤는데 위에 어른들한테 참석자 2 46:54 얘기하는데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멍 누구는 자기 아버지한테 잘못해가지고 동해에서 멍석말이 참석자 1 47:00 진짜요? 참석자 2 47:01 막 불러드리잖아요. 참석자 1 47:02 그럼 노반계에서 딱 너 아버지한테 잘못했으니까 와 이러면 진짜 그게 상당한 거의 거의 이쪽에서는 그 동네에서는 상당한 어쨌든 기물 참석자 2 47:20 그런데 그 어른들이 조선시대 때 다른 사람들은 솔직한 말로 어렵다고 다 뿔뿔이 다 흩어지고 했을 때 80가구 중에 20명이 80가구 중에 20명이 자체적으로 그 기회를 모은 겁니다. 모아가지고 자기 사비를 들여가지고 회비를 내가지고 마을 운영을 해왔어요. 그러니까 그 건의가 엄청나죠. 참석자 1 47:45 그러면 그냥 뭐 좀 여쭤보면 노후관계에 이렇게 자기 아버지나 아니면 뭐 할아버지가 계시다 하면 그걸 좀 이어받는 것도 있는 이어받는다는 느낌 참석자 2 48:02 이어받는 그런 건 없고 일반 저기 조직 그러니까 무슨 해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돼요. 자기가 그 회에 가입할 수 있으면 가입하고 이렇게 하는 거지 노한 게 자기 아버지가 했다고 해가지고 자기가 들어가가지고 이어받아가지고 뭐 그런 거는 없어 그런 건 없고 그때 당시에는 그래도 참석자 1 48:25 여기 그럼 별신굿도 옛날에 좀 했었다고 최근까지도 하셨다고 들었는데 별신굿 참석자 2 48:32 지금 하고 있잖아요. 그것도 3년에 하다가 5년 하다가 지금 7년 아마 7년 만에 한 번씩 할 거예요. 그 신고선 하는데 그거는 옛날에는 동네 동네에서 별신군을 별신 구슬 그렇게 운영 관리해 왔는데 지금은 어천계에서 하잖아요. 어천계에서 동네는 그냥 보조 역할만 안 하고 참석자 1 48:59 여기서 동네라 해도 이렇게 동네면 노방계가 관여를 하는 걸로 참석자 2 49:05 그러니까 마을 운영은 노방에서 하고 있잖아요. 지금 마을 운영은 그러니까 수입은 수입은 옛날에는 뭐 특별히 회비를 그때 당시에는 회비를 내가지고 운영해왔다 해도 지금은 어떤 수입이 있어요? 이 무 그러니까 여기 사시다가 자식이 없이 돌아가신 분들 사 지내는 조건 해가지고 자기 재산을 전부 다 동네에다 환원시키고 이래가지고 논밭 사놓고 했던 거 있잖아요. 그런 수입도 있고 나름대로 조금씩 수입이 있는 그 수입 가지고 말로 운영을 해왔는데 지금은 우리 해수욕장 수입이 만만찮아요. 해수욕장 수입이 1년에 그냥 뭐 한 5천만 원 이상은 수입이 돼요. 그러니까 그것 가지고 이제 동네 운영을 합니다. 참석자 1 49:56 아니 근데 여기 구산리가 아까 말씀하셨던 것처럼 원래는 폭우도 있었고 이렇게 했는데 해수욕장은 언제부터 이렇게 좀 공식적으로 시작이 된 겁니까? 참석자 2 50:11 해수욕장 참석자 1 50:13 관광객들이 그래 와야 해수욕장 수입이 생길 것 같은데 참석자 2 50:17 그러니까 이제 군에서 인정해 준 해수욕장은 그러니까 허가를 내준 해수욕장은 한 10년 좀 넘었을 거예요. 10년도 넘었고 그전에는 간이 해수욕장처럼 참석자 1 50:29 그냥 사람들이 와가지고 아는 사람이 알아 참석자 2 50:32 특별히 우리가 운영을 한다고 해가지고 운영위원회에서 운영해가지고 그렇게 하는 게 아니고 그냥 뭐 바닷가니까 사람들이 와서 이렇게 하고 이랬는데 한 10년 전부터 우리가 허가를 울진군 해양수산과에다가 허가를 득해가지고 한 거는 한 10년 좀 넘었을 거예요. 해수욕장 참석자 3 50:52 그러면 어떻게 확보하게 된 거는 그전부터 운영을 했었어. 참석자 2 50:56 그거는 저기 잡종지도 있고요. 저 땅이 잡종지도 있고 또 참석자 1 51:01 동해에서 가지고 있는 참석자 2 51:02 해수부에서 관리하는 해양수산부에서 관리하는 또 바다도 있고 동네에 또 땅도 있고 이래 여러 가지 분류가 돼 있어서 그래서 이제 어차피 잡병지 같은 거는 군에서 운영하잖아요. 그래서 군에서 다 허가를 내줄 때 잡병지를 이렇게 쓰라 하고 이렇게 허가를 내주는 참석자 1 51:22 내 땅도 있고 국가 땅 참석자 2 51:24 바다 쪽은 어차피 해양수산부에서 관리하는 거 그거고 참석자 1 51:31 근데 예전에 간이 해수욕장처럼 이렇게 운영하실 때도 뭔가 그래도 사람들이 찾아오면 이렇게 파라솔도 빌려주고 참석자 2 51:42 그때 당시에는 그게 없었죠. 군에서 허가를 이제 내준 그 해부터는 우리가 이제 운영을 참석자 1 51:52 마을에서 참석자 2 51:53 마을에서 운영하게 되면 다 돈 받잖아요. 지금 입장도 바꾸고 그렇게 해왔는데 지금은 입장료는 없어 입장료 없고 그냥 캠핑카나 아니면 텐트 또 해수욕장 운영하면서 샤워장 이런 거 그런 거는 우리가 요금을 받습니다. 받아가지고 그럼 참석자 1 52:12 그전에는 그러면 전혀 돈을 받거나 이런 거는 참석자 2 52:16 우리 어릴 때는 그게 돈 받고 이렇게 해수욕장 운영을 안 했어요. 안 오고 제가 알기로는 한 10몇 년 됐을 거예요. 10년 됐는데 군에서 해수욕장 허가를 내줌으로써 내주면서 이게 활성화가 됐다. 아주 옛날에는 그렇게 참석자 1 52:32 혹시 선생님 버리셨을 때 이렇게 동네에서 이 구산리도 들이 좀 있을 것 같긴 한데 동네 농촌은 좀 어디에 좀 많이 가 참석자 2 52:49 한곡 한곡 산 넘어 산 넘어 항복 항복 황보 황복 황보에 가면은 그 들이 있어요. 참석자 3 53:00 고기분들도 부산원에 좀 땅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까? 참석자 2 53:04 여기는 밭은 있는데 노는 참석자 3 53:06 그렇죠 바지 좀 많았지 참석자 2 53:07 밭은 조금씩 있어 밭은 여기 이 마을 뒤에 뒤쪽에도 있고 하는데 밭 농사보다는 논농사를 주업으로 했으니까 그러니까 밭은 그냥 있긴 있어도 그냥 특별히 밭에서는 수확 가지고 이게 삶에 어떤 보탬이 되고 그런 게 없었고 주로 이제 한 곳들 이제 산 넘어가면 한 곳들이 이제 거기에 논을 가지고 논 농사해가지고 이제 참석자 3 53:33 여섯분들도 황보에 땅을 많이 가지고 있었으니까 참석자 2 53:36 가지고 있는 분들은 가지고 있었고 그렇죠 한국 들어가는 근데 지금은 여기 해상 사업하면서 고기 잡는다고 투자 다 하고 하다 보니까 돈 팔고 밥 팔고 다 해가지고 지금 한국도에는 저기 이 동네 사람들은 거의 몽투를 가져서 별로 없고 주로 이제 저쪽에 오고 항고 이쪽 사람들이 다 사가지고 그랬거든 참석자 3 54:01 노들이 땅을 예전에 어르신들은 땅을 좀 많이 가지고 있었으니까 노반에 속해 있던 분들은 참석자 2 54:08 녹음한 게 계시지 지금 노방계 어른들은 다 돌아가셨죠 다 돌아가시고 지금 불과 몇 명밖에 안 되는데 그때 당시에 어른들 몇 명밖에 안 되고 젊은 사람들 지금 노방계에 가입해가지고 지금 운영하고 있는데 그때 당시에 노반계 계시던 분은 노방개 대원으로 계시던 분들은 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불과 얼마 안 됐어요. 지금은 지금 불과 안 됐어요. 그리고 예전에도 그때 당시에도 여기저기 돌아가신 어른들 그분들은 불과 몇 마지기입니다. 노는 몇 마지기지 참석자 1 54:48 그런 근데 그러면 이 황목들에 이렇게 논이 좀 많고 구산리 안에는 바이 밭 중심으로 이렇게 참석자 2 55:00 이렇게 부산은 요거 텃밭 비슷하게 밭이 얼마 안 됐어요. 이 동네 뒤쪽으로 해가지고 밭이 얼마 안 됐고 한국 들어가면 이제 더 이상 참석자 1 55:10 그러면 밭에서는 주로 어떤 거 참석자 2 55:14 파트는 그때 당시에는 조 같은 거 보리 조 보리 이런 거 작곡 작곡 그런 게 좀 나오고 참석자 1 55:24 이게 보리 같은 경우에는 가을에 심어서 이제 봄에 이제 추수를 하실 거고 그다음에 그러면 그다음 작물로 조나 아니면 뭐 이런 걸 키우신 겁니까? 참석자 2 55:41 그렇지 이제 겨울 작물 이제 버리고 봄작물은 소 같은 거고 고구마 감자고 참석자 1 55:48 고구마 감자 참석자 3 55:51 저기에 있는 평해 구시들이 좀 많이 살고 있습니까? 광보에 참석자 2 55:56 평의 부시들이 여기가 본데 당나라 구드림 장군의 정착지입니다. 여기가 전설로 이렇게 들어보면 그때 당시에 황씨들하고 구장군하고 황 씨하고 부대령하고 장군하고 해가지고 바다에서 떠내려왔다 이런 이제 전설이 있는데 그래서 황 씨와 구씨는 결혼을 안 한다고 그래요. 같이 이제 바닷속에 떠내려왔다고 해가지고 결혼 안 한다. 그런데 지금은 평의 부시들이 있기는 있어요. 있는데 불과 몇 명 안 됩니다. 그대 장군 후수세라고 그래가지고 그래서 당신들이 엄청 많죠. 그래서 지금 한복 들어가면은 참석자 3 56:38 부대림 장군 그것도 있으니까 참석자 2 56:40 우대림 장군의 묘소가 있어요. 있는데 저도 한번 가봤는데 계곡에 들어가면 산비탈에 한 참석자 3 56:50 근데 그분들이 여기에 구산리에 조금 밭을 가지든지 아니면 그거 배 고기 잡거나 배 이런 거에 조금 관여하는 게 있었습니까? 참석자 2 57:02 평에 구시들은 이쪽으로 참석자 3 57:03 평의 구시가 아니더라도 황 씨라도 그 뒤에 그쪽에 사는 분이 황보 쪽에 사는 분들이 참석자 2 57:08 글쎄요. 항씨든지 구시든지 그분들은 평양이나 저쪽으로 가든지 있어. 여기는 항항시나 구시가 이쪽으로는 활동이 없었어요. 여기는 여기는 항시가 별로 없더라고요. 구시들 보니까 여기는 본데 거기 안씨들 있잖아 안씨들 주로 얘기하는 건 안씨 텃밭에 김씨 김씨 뭐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데 참석자 1 57:36 아니씨 텃밭 참석자 2 57:38 텃밭이라고 그러잖아요. 참석자 1 57:39 이게 안시면 어디에 안시 참석자 3 57:43 그 그냥 술 마시겠지 참석자 2 57:44 아니 수능 수능 수능 아저씨들 그리고 이제 늦게 김 씨들이 여기 들어와서 살라 그랬는데 참석자 1 57:51 저기 본관 선생님하고 참석자 2 57:53 우리도 본대 저기 사동에 집성촌이 있었는데 이쪽으로 불이 다 흩어지니까 여기도 나오고 쪽으로 나가고 참석자 3 58:02 씨는 어떻습니까? 손 씨 참석자 2 58:04 송 씨 손 손 송 씨들도 여기 몇 분 계시더라고요. 근데 여기는 이 마을에는 아까 얘기했듯이 안씨 텃밭이라고 그러잖아요. 김치 고말이 뭐 어떻고 이렇게 하는데 그래서 이제 지금은 안 씨들도 몇 명 없어요. 김 씨들도 몇 명 없고 손씨들도 전에는 몇 분 계 참석자 3 58:27 씨가 재산을 좀 많이 가졌나 싶어서 참석자 2 58:29 손 씨들은 특별히 여기에서 어떤 재력과 이런 사람들이 별로 없었는 것 같아요. 제가 알기로 손 씨가 소은 씨가 그래봐야 한 분 두 분 세 분 네 분 한 5분 참석자 3 58:43 근데 아까 말씀하셨던 동사 그거 원문에도 보면은 이제 제일 좀 그리고 그전에도 돈을 내놓고 하는데 보면 소신분이 조금 많이 하더라고요. 참석자 2 58:54 우리는 잘 모르겠다. 손응용 씨 이런 분들이 손씨들이 수도 있고 어쨌든 어쨌든 그 시절에 그래도 이 마을 일을 학문적으로 좀 유식했는 분들 같아요. 같은데 우리가 알기로는 그분들이 모르겠어요. 그분들 다 돌아가시고 그 이후에 그 후손들이 이제 우리 연결되는지도 잘 여기 형님 불 되는 사람이 이제 군청에 근무했던 사람 있고 또 이쪽에 가면 또 손 씨라고 또 가게 했던 사람이 있고 이런데 그분들은 우리 또래고 참석자 1 59:29 그럼 선생님 어리셨을 때 그래도 이 450호나 되는 마을에서 좀 부자라는 분들도 꽤 있을 거 어업도 하시고 참석자 2 59:40 그때는 논 좀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부자라고 그랬고 실제 어업하는 사람들은 별로 부자 축에도 못 들어갔지 참석자 1 59:49 그 당 참석자 2 59:50 돈 좀 가지고 있는 사람 참석자 1 59:51 그럼 어디 어디 참석자 2 59:52 그분들이 있는데 그때 당시에 논점 가지고 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은 또 세월이 지나고 나니까 고기 잡는 사람들이 더 부자 행세를 하더라고 농사 지어가지고는 별 소용이 없잖아요. 그렇죠 그러니까 고기 좀 잡아오면 고기 잡는 사람이 그래서 바꿔지더라고 참석자 1 1:00:12 선생님 어리했을 때 그러면 주로 어디 우성 씨나 아니면 유명하신 부자라고 이런 사람이 있으십니까? 참석자 3 1:00:25 아인 씨하고 참석자 2 1:00:26 그때 당시에는 거기 논점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몇 분 계었어요. 동네에서 참석자 1 1:00:33 우리도 선생님 참석자 2 1:00:35 우리도 김 씨도 할아버지가 그때 당시에 할아버지 살아계실 때 우리 할아버지 참석자 1 1:00:44 할아버지 성함이 조남이 어떻게 누가요? 할아버지 조남 참석자 2 1:00:49 김덕기 김 참석자 1 1:00:51 김덕자 기자 참석자 2 1:00:52 지금 자꾸 물으면 내가 그걸 대답을 제대로 못해요. 그게 없어갖고 김덕기라는 김자 덕자 기자가 우리 할아버지인데 할아버지 형제들이나 이런 거 할아버지 형제들이 그때 당시에 마을에서 괜찮게 살았어요. 그래서 저기 서낭제에서 소 요랑마리를 하나 먹으러 참석자 1 1:01:12 이 왕이 워낙 워낙 참석자 2 1:01:15 그게 선안지에서 딸랑딸랑딸랑딸랑 소리 나면은 콩밥골레 이러거든요. 콩밥골레 아니면 자돈에 그게 이제 소가 넘어온다. 한고들은 이제 농사를 많이 지으니까 그래서 그때 그때 당시에 우리 할아버지 세대는 부자 소리를 들었고 그 이후에 우리 아버지 세대는 고기 많이 잡아먹는 사람이 부자입니다. 농사짓는 사람은 배볼 일 없었어요. 그 우리 아버 참석자 1 1:01:40 이 때만 오셔도 어업이네요. 참석자 2 1:01:42 우리 아버지 세대는 그나마 그래도 대개도 작고 반도 작고 이렇게 해가지고 우리가 생활이 괜찮았어요. 괜찮았는데 참석자 3 1:01:50 김덕자 기자 어르신을 제 참석자 2 1:01:52 그런데 솔직한 말로 그 쌀밥 먹고 사는 사람들이 부자지 벌밥 먹고 사는 사람들이 부자 아니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고기 한 마리 팔면 쌀 한 데 사올 수 있으니까 그래서 아버지 세대는 그래도 배 사업도 했고 참석자 1 1:02:07 배 사업도 하셨어 아버지가 그러면 아까 전에 말씀하셨던 그 도배 이런 것도 가지고 계 참석자 2 1:02:15 아버지는 저는 저는 이제 동역성 동역성은 6. 한 3톤 정도 구운 거 가지고 베개 잡고 해가지고 저도 한 회사 한 20년 했나 참석자 1 1:02:28 이 대단하시네요. 참석자 2 1:02:30 20명 했는데 여기서 배 하나 가지고 있으면 그래도 부자 소리 듣지 실제 돈 백만이 가지고 있어요. 참석자 1 1:02:38 그렇죠 그렇죠 참석자 2 1:02:39 수입이 있어야 되지 논에는 그래봐야 1년에 쌀 몇 감아야 참석자 1 1:02:43 선생님께서는 그럼 주로 어업으로 뭐 하셨던 참석자 2 1:02:46 우리는 대게 잡고 참석자 1 1:02:48 대게 잡곡 시기가 있지 않습니까? 대게면 겨울 참석자 2 1:02:52 대게는 겨울에 참석자 1 1:02:53 겨울에 한 몇 월 12 참석자 2 1:02:55 2월부터 한 2 3월달까지 참석자 1 1:02:57 3월 되게 참석자 2 1:02:58 이제 문어 같은 거는 계속 연중으로 참석자 1 1:03:01 운동하는 연주 참석자 2 1:03:04 특별히 여기는 대게 문어 외에는 특별히 고기 많이 잡 참석자 1 1:03:08 그럼 참석자 2 1:03:10 정치망도 매년 했거든요. 정치망도 참석자 1 1:03:13 정치망도 하셨습니까? 참석자 2 1:03:14 그런데 별짓을 다 했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고생 엄청 했죠. 그래도 안으로 살아가는데 참석자 1 1:03:22 예 고래도요. 그물에 걸렸던 겁니다. 참석자 2 1:03:27 고래를 잡아가지고 경매를 했는데 참석자 3 1:03:30 경매기 때는 거 참석자 1 1:03:31 한 몇 년 전에 참석자 2 1:03:32 4,100만 원 나가더라고 그래서 대구에서 학생들이 여기 위판장에 와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대구대학생 경매한데도 4,100만 원 이러니까 학생들이 막 박수쳐 로또 당 참석자 1 1:03:48 정치 방에 해놓으셨는데 참석자 2 1:03:51 아이고 저 개인이 사고 참석자 1 1:03:55 진짜예요 참석자 2 1:03:56 고기가 미쳤어 그거 통보에 주저 길르게. 근데 그게 있잖아요. 해상 사서 돈 벌면 하루아침에 다 날아가 제가 고래 한 마리 잡고 돈 600만 원 썼다니까 밥 사주고 참석자 1 1:04:09 4,100만 원 중에 세금 세금도 내셔야 되는 거예요. 이거 참석자 2 1:04:13 세금도 내야 되고 해경 수협 인사하러 다니는데 만 원 2만 원까지 인사 못 하잖아요. 그래서 봉투에 몇십만 원씩 열어가지고 하다 보니까 나중에 계산해 보니까 여기 어르신 경비가 참석자 3 1:04:26 좀 키웠습니까? 소 네 참석자 2 1:04:30 저는 여기 개를 키우는 사람 없어요. 참석자 3 1:04:32 어린 시절에도 기억이 잘 없으시네요. 소에 대한 게 참석자 2 1:04:36 소는 한두 마리지 그냥 농사 짓기 위해 마다 한두 마리 소를 마을 참석자 3 1:04:41 에서 소를 관리한 적은 없고 참석자 2 1:04:42 그런 건 없었어요. 이 마을에는 그게 없었고 돼지는 조금 미인 사람이 있어 돼지는 뭐 몇십 마리 먹이다가 그것도 파동 와가지고 참석자 3 1:04:50 제사 지낼 때 그럼 손은 안 잡습니까? 참석자 2 1:04:53 여기 있잖아요. 항복 들어가면 소 엄청 한 500마리 이상 비는 사람이 있습니다. 항복하면 그리고 그쪽에서 귀성 귀성 여기 가도 소마이에요. 저기 내륙에 가면 소 보통 한 30마리씩 50마리씩 먹는 사람이 있어요. 근데 학교 가면 수명인 사람은 한 500마리 이상 되는데 소가 몇 마리고 물어보니까 숫자 파악을 못한대요. 새끼 넣고 팔고 막 이러다 보니 참석자 1 1:05:20 너무 왔다 갔다 참석자 2 1:05:21 엄청 많아요. 500마리 이상 돼 더 잘하 참석자 3 1:05:23 여기하고 완전히 그렇죠. 이게 생업 기반이 다르 참석자 2 1:05:26 가보면 기업인데 그냥 외국 애들 데려다 놓고 참석자 1 1:05:33 본인은 이렇게 경영하시는 거 참석자 2 1:05:36 평양에 가면 그쪽에 가면 소 한 5~600m가 넘는 사람도 있긴 있어요. 참석자 1 1:05:42 선생님 그러면 여기서 선생님 어리셨을 때 저기 뭐야 집에도 어쨌든 논이나 이런 게 좀 있으셔가지고 참석자 3 1:05:55 황포 쪽에서 이래 내려오실 때 참석자 2 1:05:58 우리는 소도 소 그냥 여기서 먹일 형편이 안 되니까 소를 새끼를 사가지고 반작을 준다고 그래요. 반작 반 반작 준다고 그러면 소 사람들이 그걸 먹여요. 소를 여기서 서 사람들도 큰 돈 들여가고 송아지도 목사는 편 안 되니까 여기서 한 마리 사가지고 주면 이 사람들이 그 소를 먹여가지고 나중에 키워가지고 새끼는 떼가지고 자기가 가져가고 어미 소는 주고 이렇게 그러니까 그걸 이제 이게 농사하는데 이 소 가지고 했잖아. 옛날에는 좀 기계가 없으니까 그러기 위해가지고 이제 소 사가지고 그렇게 하는 거지 특별히 수익을 보려고 하는데 참석자 1 1:06:38 그걸 이제 키우셔서 선생님도 쟁기질은 안 하셨죠? 소어 끓어가지고 쟁기질도 하셨어 참석자 2 1:06:45 그건 못해봤어 참석자 1 1:06:46 아버님께서도 그럼 주로 이 배 사업을 많이 하셨던 건가요? 참석자 2 1:06:52 농사는 조금밖에 안 했어요. 농사는 그냥 우리 거기 참석자 1 1:06:58 아버님이 혹시 저기 속초나 이 위쪽으로 명태 잡으러 갔다 갔다 왔지 갔다 오셨습니까? 아버님 저는 안 갔다 오고 아버님이 참석자 2 1:07:07 우리 아버지가 옛날에는 강원도 고성 쪽으로 명태 잡으러 가 참석자 1 1:07:11 진짜 그럼 이게 이 동네분들도 명태 잡으러 많이 참석자 2 1:07:16 많이는 안 다녔는데 몇 분 정도는 그렇게 가신 분들이 계셨던 것 같아서요. 참석자 1 1:07:21 그러면 그렇게 아버님이 가시면 좀 뭐라 하지 한 몇 달 동안 나갔다 오 참석자 2 1:07:29 그렇지 그러니까 이제 집에서 이제 누나들 누나 있는 사람들 누나들이 이제 애들 동생들 키우고 이렇게 그래서 참석자 1 1:07:39 집에 그런 머슴도 이렇게 두거나 그러지는 않으셨어 참석자 2 1:07:42 우리는 모순 두고 이렇게 생 참석자 1 1:07:44 그러면 이 저기 전반적으로 구산리에 우물은 한 몇 개 정도 되세요 저번에 거일 가니까 거기는 우물이 그렇게 물이 그렇게 귀했다고 해서 혹시 구산도 물이 귀했나 해서 참석자 2 1:08:01 여기도 물은 바로 여기 옆에 가면 소사골 아까 얘기했던데 이 물이 진짜 잘 나왔어요. 이 물을 계속 사용하다가 상수도 들어부터 이 물을 이제 안 먹고 가는데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제 우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몇 사람 있었고 개인적으로 참석자 1 1:08:19 선생님 혹시 집에 개인적으로 참석자 2 1:08:22 오고 저쪽에 가면은 또 제 개인 물이 있고 또 이거는 공동으로 사용 그때는 물이 귀했지 물이 지금도 귀했지 물이 없으면 그리고 이렇게 요즘처럼 이렇게 가물지는 않았지 어느 정도 그래도 물이 이 샘이 나오기 때문에 그런데 이제 물 없으면 이제 등너머에 가가지고 물 길러 오기도 하고 찬물 내기 하는데 거기도 계속 찬물이 계속 나왔잖아요. 옛날에는 새물이 그렇게 나와가지고 거기서 빨래가 물 길러 먹고 그렇게 밥에 했는데 그런 생활을 했는데 어쨌든 물도 그렇게 많이 안 쓰는 것 같아요. 옛날에 빨래도 솔직한 말이고 또 한 사람 하고 나면 그 참석자 1 1:09:05 빨래도 그런 소사골 우물 쪽 가서 참석자 2 1:09:07 여기서도 했고 또 이제 거랑골 거골 그랑골 거기는 그냥 물이 흘러내려왔다. 요즘은 물이 안 내려오잖아요. 그런데 그때는 위에서 물이 흘러내려와 거기서 빨래 참석자 1 1:09:20 그래서 거랑골이구나. 거랑 거랑 참석자 2 1:09:23 빨래 빨래터 그랑 빨래도 옛날에 다 거기서 빨래하고 애들도 거기서도 무장 놀고 이랬는데 이제 복귀하고 나가지고는 그 사람 안 들어가죠. 지금 물은 또 안 내려오고 거기 거기 옛날에는 그 물 많이 내려왔는데 지금은 물이 안 내려 참석자 1 1:09:40 선생님 그럼 여기 짬에서 미역 채취도 같이 좀 하셨어 참석자 2 1:09:45 제지는 지금도 하고 있잖아 참석자 1 1:09:46 그러니까요. 참석자 2 1:09:47 여기 동네 어청계 소유 짬이 있는데 옛날에는 이 마을 사람 있잖아요. 도민들에 한해서는 전부 다 이게 짬을 한 자리씩 줬어. 근데 지금은 어촌계에 가입해야 돼. 그러니까 동네하고 어촌계하고 그게 이제 분류가 됐어. 우승에는 업체도 어촌계는 어촌계 그러니까 짬은 바다는 바다는 어촌계의 소속이고 그 동해는 동해대로 따라 참석자 1 1:10:16 그게 한 언제쯤부터 좀 분리된 겁니까? 참석자 2 1:10:20 분리되는 거는 꽤 오래됐네. 어차피 도민들이 도민들이 그러니까 이제 생업에 바다업에 종사했던 사람들은 다 짬을 한 달씩 줬거든요. 줬는데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 지금 엄청 많아요. 지금 원주민들보다가 귀촌인들이 더 많은 것 같아. 그분들은 주민 행세를 못하잖아요. 그럼 여기 와가지고 한 10여년 정도 살아야 주민 행사를 할 수 있도록 동법에 그렇게 만들어 놨어. 동법에 그래 만들어놔가지고 그 사람들은 5년인가 10년인가 잘 모르겠더라고요. 노방계에서 그걸 운영하고 있으니까 저는 신경 안 써서 잘 모르는데 그래 하면 이 사람들이 동네 신참회라는 게 있어. 참석자 1 1:11:09 신창회 참석자 2 1:11:10 처음에 거기 이제 인사를 해야 돼. 어른들한테 인사하고 또 어른들이 식사 대접도 하고 그래서 그래서 이제 참석자 1 1:11:18 동네 주민들 참석자 2 1:11:19 주민으로서의 자격을 얻는 거예요. 그래야 동네 무슨 행사에도 참석할 수도 있어. 참석자 1 1:11:24 예전 같으면 저기 짬도 한 개 받을 수 있고 그런 참석자 2 1:11:28 잠은 어차피 어촌개 참석자 1 1:11:30 전 개원을 참석자 2 1:11:31 그건 그건 분류가 돼 있어. 참석자 1 1:11:33 그게 그럼 꽤 오래전 일이면 한 20년 전 30년 전 아니면 또 참석자 2 1:11:39 그래 오래됐을 거예요. 특별히 몇 년도에 했다고는 내가 기억은 안 되는데 오래 됐을 거예요. 우리도 우리 아버지 세대가 짬을 가지고 있었고 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우리한테 승계한 거죠. 그렇죠. 그래서 받아 참석자 1 1:11:58 그 짬은 이게 매번 돌아가는 게 아닙니까? 이렇게 참석자 2 1:12:02 매년 매년 참석자 1 1:12:03 이거 짬을 새로 분배 그니까 어차피 권리 가지고 있는 분들한테 짬을 이렇게 새로 참석자 2 1:12:09 정원에 가입된 사람에 한해 가지고 참석자 1 1:12:11 추첨을 하잖아요. 추첨을 참석자 2 1:12:13 추첨해가지고 짬이 몇 개냐 참석자 3 1:12:17 7개까지 봤는데 저는 참석자 2 1:12:20 저기 선바우라 그래 선바 선바위 선바위 검정바위 담치바이 참석자 1 1:12:27 다음 참석자 2 1:12:28 그다음에 이제 개 개심짬 이래가지고 이 개심짬 큰 게 고래바위 6개네 큰 개 큰 개는 큰 개라고 이렇게 불러 참석자 3 1:12:40 7개까지 가는데 이제 6개 참석자 2 1:12:42 선바위 선바위보다 금융바위 담치바위 개신장 콩장 저기 고려해봐야 6개 에서 6개 6개인데 지금은 좋은 짬은 그대로 운영하는데 나쁜 짬이 있잖아요. 무역도 많이 잘라나고 그러는데 그거는 엉쳤어 그래가지고 저 위에 이제 담 참석자 1 1:13:07 없었다 참석자 2 1:13:09 선바위하고 검정바위하고는 두 개 엄쳐가지고 그러면 이제 하나는 한 자를 한 구자지 한 구자를 만들어 놨고 이제 큰 게 짬은 이제 항만 대게 없애버리고 이제 그르바이고 사라졌구 지금은 추첨할 수 있는 짬이 5개 참석자 1 1:13:29 그러면 지금은 선바위 검정바위 한 짬 담치바위 한 잔 그다음에 개심짬 고래바위이네요. 참석자 2 1:13:39 그럼 몇 개 넣어 5개 만 참석자 1 1:13:41 그럼 한 에 한 이 한 자에 한 참석자 2 1:13:45 대원들이 한 100명 정도 되거든요. 그러면 좋은 짱은 한 30명 지금 나쁜 짱은 한 20명 이래가지고 5점이 그래서 100 그걸 분배해가지고 하는데 요즘은 그게 미역해가지고 미역 넣을 사람도 없어요. 할머니들은 그걸 어떻게 수송할 방법도 없어 힘이 없어서 그래서 그걸 그냥 전부 다 이제 중계에서 몽땅 같이 두드려 경매하자고 하고 이런 얘기도 나와요. 다 참석자 1 1:14:19 달에는 그러면 참석자 2 1:14:20 다 돼 있어 다 참석자 1 1:14:21 따 와서 이쪽에 어디쯤에다가 이걸 다 참석자 2 1:14:25 개인적으로 전부 다 그렇게 했는데 개인적인 인생이 참석자 1 1:14:33 개인적으로 안 좋아 참석자 2 1:14:36 공동으로 안 하고 개인적으로 개 참석자 1 1:14:38 개인적으로 건조를 하고 참석자 2 1:14:40 개인이 관리하고 그러니까 할머니들은 한 점을 줘도 힘들잖아 어차피 옛날부터 그 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렇게 좀 힘들어가지 못하고 참석자 1 1:14:54 만일에 근데 좋은 짬에 들어가면 짬에 들어가서 채취는 참석자 2 1:15:01 채취는 공동으로 시켜요. 공동으로 하고 공동으로 이제 여기 위에 거는 스쿠버나 아니면 헤드는 소동 시켜가지고 그걸 갈라주잖아 씨는 그러면 이제 걔네들은 이제 거기에 일당 같은 거는 이제 얼마씩 내가지고 이제 주 참석자 1 1:15:17 금 선생님 젊으셨을 때는 어떠셨습니까? 선생님 막 이제 어업에 이제 막 종사하기 시작하셨을 때쯤 얘는 어떠셨습니까? 지금처럼 지금 스킨스쿠버나 해녀들이 하지만 옛날에 다른 데 가니까 모구리가 해줬다. 깊은 바다에 있는 건 모구리가 가고 위에 거는 설라소리 참석자 2 1:15:39 옛날에는 짱을 이렇게 개인적으로 안 하고 공동으로 경매해버려요. 경매하면은 그 사람들이 사가지고 그 사람도 사가지고 무리배나 이런 데 이제 해가지고 자기들이 개인적으로 그렇게 동민들이 사람을 사가지고 하든지 품 주고 하든지 해가지고 넣어가지고 팔고 했는데 이제 그게 어느 때가 없어지고 개인적으로 이제 분배해가지고 그렇게 참석자 1 1:16:10 예전에는 이렇게 공동으로 참석자 2 1:16:16 공동으로 지금도 그래 하는 데 있어요. 지금 저기 망양 같은 데 가면은 개인적으로 그렇게 하니까 힘들잖아요. 그래서 전체를 한 사람한테 경매가 공동으로 넘기고 이렇게 참석자 1 1:16:28 넘기면 그 사람들이 채취까지 다 해가지고 그거를 이제 참석자 2 1:16:32 그러니까 얼마 쌍값이 얼마 해가지고 전기 내주면 그 사가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해가지고 팔 참석자 1 1:16:39 그러면 실제로 마을 사람들이 가서 떼베에다가 설라으로 채취해서 막 그걸 다 같이 놀고 이런 거는 아니었어 참석자 2 1:16:50 지금은 그래 하는데 없어 참석자 1 1:16:51 이거는 과거 모습인 겁니까? 막 떼에 이렇게 가가지고 설라으로 위에 건 채취하고 밑에 거는 모구리나 해녀분들 와가지고 뭐 이렇게 채취해서 그거를 다 같이 놀고 막 이런 참석자 2 1:17:06 지금은 그래 하는 데가 없어 지금은 몰라 다른 데는 어떻게 하는지 몰라도 여기는 여기는 그렇게 안 해 참석자 1 1:17:12 구산리는도 예전에는 그럼 그렇게 했던 겁니까? 이렇게 참석자 2 1:17:19 예전에는 특별히 그렇게 한 걸 참석자 1 1:17:22 제가 기억이 잘 없는데 참석자 2 1:17:24 저는 이게 저기 짬을 추청해가지고 한 사람한테 몇 사람 주잖아요. 그거 이제 그 짱꾼들이 알아서 이제 채취해가지고 헤드를 넣든지 안 그러면 스코어를 넣든지 채취해가지고 갈라지고 하나 그냥 개인적으로 이렇게 건조하고 오목과 살이나 참석자 1 1:17:49 이런 거는 참석자 2 1:17:50 문가사리도 옛날에는 문가사리가 엄청 많이 나와가지고 해들이 이렇게 뜯어가지고 하고 우리도 파도 치면 주어가지고 일도 하고 했는데 문제는 없어요. 백화 현상 알아요 백화 참석자 1 1:18:02 예. 밑에 바다 많이 참석자 2 1:18:04 지금 백화 현상이 일어나고 해가지고 옛날에 나던 풀이 하나도 없어. 미역도 그렇고 어묵과 살이든지 뭐 그거 있잖아. 참석자 1 1:18:15 여기도 그렇게 참석자 2 1:18:17 고기도 그렇고 고기도 엄청 옛날에는 우리가 고기 고기를 막 잡아냈는데 이제 그거도 없고 먹고 살기 힘들지 참석자 1 1:18:26 오늘 많이 배웠네요. 선생님한테 진짜 진짜 많이 배웠어요. 참석자 2 1:18:35 저 진짜 못 풀었어요. 여기까지 참 참석자 1 1:18:37 아니 뭔 참석자 2 1:18:39 어떤 분 한번 보 참석자 1 1:18:40 예예. 저희 여기 한 지금 두 번째 참석자 2 1:18:43 아니 먼저는 못 사신다. 그분이 참석자 1 1:18:48 이렇게 남성으로 참석자 3 1:18:50 선생님 안동에서 오신 참석자 1 1:18:52 안동대 참석자 2 1:18:54 목포 어디 대학교 다니신다는 말 참석자 1 1:18:56 아니요. 안동대인데 저희랑 같이 이렇게 안 하고 있어 예. 참석자 2 1:19:00 그분 가끔씩 와요. 참석자 1 1:19:02 아 예예. 참석자 2 1:19:03 낚시하고 저하고도 막상 얘기도 하고. clovanote.naver.com